가르랑거림의 진동, 손과 턱에 와 닿는 장력, 사포 같은 혀의 오묘한 촉감, 다리 사이로 유연하게 빠져나가는 앙고라 털의 포근함... 고양이의 헤아릴 수 없는 매력의 극히 일부라도 느껴본 이들이라면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고양이>에 대한 설명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 이전부터 그들의 머리와 가슴 속을 달리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헤리엇은 작은 동물 친구들의 수호천사로 변함없이 영국의 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고양이>에서는 이전 에세이보다 조금 더 성숙한 수의사 헤리엇과 사랑스러운 삽화 그리고 조금 더 진한 감동의 고양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헤리엇과 연이 닿은 고양이는 그들의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제각각이다. 눈이 마주치면 도망치기 바쁜 녀석이 있는가 하면 오토바이 모터를 켜고 달려오는 녀석도 있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경계심 강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 발길이 미치는 곳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녀석도 있다. 책장을 넘기며 심장이 분홍빛 솜사탕이 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후자의 오지랖 넓은 고양이 오스카 덕분이다. 사계절 내내 공원에서 망부석처럼 지내던 고양이를 한 방송에서 구조해 입양을 보낸 적이 있다. 구조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고양이는 자연 일부로 전혀 이질감 없는 풍경이었다. 오히려 구조라는 명목으로 가해진 인위적인 힘이 부자연스러웠을 뿐이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어디가 가장 안전하고 안락한 곳인지.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의 관점과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다. 입양된 공원 고양이의 최후는 처참했다. 이미 예고된 비극이었는지도 모른다. 관점과 관점 사이에서 선한 의지는 무서운 흉기가 될 수도 있다.헤리엇 부부와 올리,지니와의 관계를 통해 이 간극을 조금은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부로 상대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 시간의 힘을 믿으며 소유가 아닌 공존을 향해 가는 것... 그들이 길 위의 생명과 관계 맺는 방식은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머물 수 있게 해준다. * 녀석들은 내가 충분히 시간을 들여 귀여워해 줄 때까지는 먹이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녀석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배려와 친밀감이에요. (중략) 그건 참을성 있게 해나가지 않으면 안 돼요. 나도 녀석들의 신뢰를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p193)달달한 사탕 가게 고양이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남기고 떠난 고양이까지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를 가진 작지만 강한 생명들, 그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 그리고 인간미 진하게 풍기는 수의사 덕분에 혹한의 겨울 날씨도 따듯하게 보낼 수 있었다. 거리의 생명들에게도 이 온기를 전하고 싶은 겨울밤에 읽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