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인문학 - 아는 만큼 꼬신다
김갑수 지음 / 살림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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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방송에서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소위 말하는 꽃뱀의 신상이 밝혀진 적이 있다. 사진이 공개되기 전 패널들은 상상 속 그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모두가 저마다의 절세미녀를 그렸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막상 공개된 사진 속 여자의 모습은 평범하고 흔했으며 호감형은 더더욱 아니었다. 실망스럽다 못해 황당할 정도였다. 

적어도 사람을 꾀거나 홀리는 데 외모가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남녀 관계에 대한 통념에 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p17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힘은 어떻게 발휘되는 것일까? 

이런 일련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나름의 경험과 연륜으로 경쾌하게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피력하는 것이 이성에 국한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속되고 가벼운 것부터 교양적이고 깊이 있는, 좀 더 포괄적인 이야기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작업 인문학은 '교양적 욕망'이다. 이건 내가 임의로 붙인 말이다. 자기 안에 무언가 갖고 있어야 이야기가 되는데 그것을 갖는 게 쉽지 않다. p16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사람의 생김새만큼이나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니 방법이란 것이 있어도 변수가 너무 많아 무용지물에 가깝다. 좀 더 본질적이고 불변한 무엇인가에 접근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것을 '교양적 욕망'이라고 콕 집어 말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인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지적이고 영원한 그 무엇엔가 닿길 원하는 본능 말이다.



인문적 가치와 교양적 욕망 속에서 사람이 깊어지고 그런 가치와 욕망을 교류하는 관계에서는 이익을 주고받는 세속적 교환가치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19




 '교양적 욕망'의 자극이라는 작업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을뿐더러 에둘러 설명하지 않아 문장에서 경쾌함이 느껴진다. 문자가 음성으로 전환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프롤로그를 보니 1부의 이런 속도감은 강연 녹취록에서 오는 특징이자 장점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1부의 초반 내용은 타깃의 설정, 전술 설계, 무기 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반부에서는 이 무기의 총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악과 커피. 흥미로울뿐더러 이야기의 확장이 용이해 더없이 좋은 소재라고 생각된다. 음악의 기원과 음악가의 일생을 아는 것도 진짜 커피와 한 잔의 커피가 우러나는 과정을 아는 것도 재밌다. 넘겨지는 페이지와 비례해 오감이 자극되고 육감이 살아나는 듯하다. 


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로커'에 보면 밥 딜런의 노래가 신처럼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이런 설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는데 책에 간략하게 소개된 그의 행보만으로도 난해했던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 불참이 가장 그다운 행동이었다는 것도 말이다.


구성과 편집이 재밌다. 1부는 옅은 갈색의 글씨로, 2부는 짙은 검은색으로 인쇄되어 있는데 전반부보다 후반부의 글씨 색이 눈의 피로가 더하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용도 이런 색의 변화와 비례해서 밝은 것이 어두운 것으로 경쾌했던 것이 무겁고 불편한 것으로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은 여정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 증발해 버리고 그 자리를 피로와 고됨이 채우듯이 상상 속 혹은 문학 속 본질적이고 순수한 사랑이 실현되고 현실이 되면서 그 모습은 변형되고 의미는 퇴색해 버린다. 그리고 불륜, 권태, 일탈 등의 부산물이 남는다.

2부는 이 부산물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현실 속 남녀 그리고 그들의 적나라한 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솔직히 말하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영역도 있다. 연애에 관한 주관이라든지 그 출발점에 대한 견해가 전자이고 언어유희나 애인 그리고 불륜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후자이다.

곱씹을수록 불쾌한 낱말들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의 유머감각이 완충재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라 책장은 잘도 넘어간다. 


하지만 다음에는 촛불을 불면 도깨비가 소환되는 그런 이야기도 해주었으면 한다. 중년의, 결혼 후의 사랑이 불안하고 불편한 모습일지라도 조금은 예쁜 포장지로 포장을 해주었으면 한다. 때론 새빨간 거짓말보다 새하얀 진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드니 말이다.



연애란 평범한 두 사람이 멋진 관계를 창조하는 일이지 이미 멋진 상대와 예정된 과정을 거치는 행위가 아니다. p204


저자는 작업 인문학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자기 안에 무언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여기서 말하는 '무엇'은 결국 인문학에 닿아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일 것이다. 책 '작업 인문학'은 인문학에 뿌리를 두고 자기만의 색깔과 아우라를 만들며 내실 혹은 내공을 쌓으라는 연애 고자를 위한 조언서인 동시에 세상의 모든 '아는 여자'와 '변태들'의 사랑에 대한 응원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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