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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다면
애덤 해즐릿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일본의 한 유명인이 말했다고 한다. 가족은 누가 보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다소 과격하지만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가족이란 이름의 버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가정이 나름의 중력을 이겨내고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크든 작든 가족 간의 혹은 가족으로 인한 균열과 진동을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소설 <내가 없다면>은 한 가정이 겪을 수 있는 고통과 불안의 끝을 극단적으로 그려낸 이야기이다.
미국 여자와 영국 남자가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꾸려 자식이라는 결실을 맺고 살아가는 단순한 구조가 '남자들'의 정신질환이라는 설정에 의해 요동치는 모습이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작가의 이런 섬세함이 때론 독자를 곤혹스럽게 한다. 시작도 끝도 의미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허구의 인물 사이를 흐르는 시간이 읽는 이에게는 진짜가 되기 때문이다. '애덤 해즐릿'은 존과 존의 가족이 처한 상황에 독자를 매몰시킨다. 후반부에 이르러 시종일관 돌고 있던 맴이 소용돌이였단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읽는 내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답답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작가가 그려낸 가족상에는 이질감과 동질감이 공존한다. 이것이 책장을 넘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고체의 상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것만 같던 미국의 가족 구성원이 소설 <내가 없다면>에서는 액체에 가깝게 설정되었다. 서로가 서로에 깊게 개입되고 관여하며 섞여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한 가족의 러브 스토리'라고 표현했다. 소설 중후반까지만 해도 <내가 없다면>은 투병기 내지 투쟁기에 가깝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작가의 이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진다. 이 이야기는 러브 스토리이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우리를 위해 나를 얼마나 희생했는지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극단적인 선택조차 말이다.
+ 오빠는 우리가 오빠를 위해 원한 삶을 자신도 원해보려는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빠가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우리는 개인이 아닌데. (p405)
+ 엄마는 우리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거지. 우리가 함께했던 세계가 변하지 않도록 말이야. 나도 이젠 그걸 이해해. (p422)
가족의 의미, 일상의 가치를 묻는 러브 스토리 <내가 없다면>이
어둠의 끝자락 빛의 초입에서 기다리는 겨울에 읽다.
+ 의미란 삶에 내재된 것으로, 살다 가끔 깨달으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하지만 괴물이 당신의 머리 뒤쪽에 깔때기를 꽂고 당신의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을 다 빨아내 망각의 아가리로 처넣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불구자처럼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지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즉 일상의 의미를 열망하고 있다.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