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문제를 다 차지하더라도, 탈성장을 하려면 자본가 계급과 이들의 이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국가기구 및 자본주의 시스템과 정면 대결해야 할 터인데,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법에 있어 기존 자율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와 차이가 무엇인가? 안드레아스 말름 책과 비교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 21세기 생태사회주의론
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우석영.장석준 옮김 / 마농지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시공산주의의 구체적 내용들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보고 다투어볼 것들이 있을 수 있으나, 전시공산주의라는 해법을 고민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훌륭하다! 말로만 기후정의가 아니라 정말로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계, 권력, 사회 - 인터넷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박승일 지음 / 사월의책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동진 선생님을 믿고 구매했는데. 왜 추천하셨을까? 기존 논의들의 요약으로 읽으면 도움이 되겠으나, 새로운 사유는 눈에 띄지 않고, 자본주의에 극복에 대한 고민은 반쪽짜리도 안되는 그저그런 이야기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거는 민주적인가 - 현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비판적 고찰, 폴리테이아 총서 2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한데 왜 우리는 매번 선거를 치르고 민의가 반영된 선택된 후보를 선출한다면서도, 그 후보가 선택된 후에는 항상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일까? 또 선거가 치러진 후 몇 년간 잊고 있다가 투표할 때만 자신을 주권자로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민주주의의 꽃이라 믿고 있는 선거라는 제도는 절차의 공정하게 진행되기만 한다면 도달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있다는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베일은 아닐까?

 요컨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고정화를 저지하기 위해 채택한 시스템의 핵심은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추첨)이었다. 제비뽑기는 권력이 집중되는 장소에 우연성을 도입하는 것이며, 우연성을 도입함으로써 고정화를 막는 것이다. … 만약 무기명 투표에 의한 보통선거, 즉 의회제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독재의 형식이라고 한다면, 추첨제야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그의 책 [트랜스크리틱]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또한 지젝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고진의 이 주장을 옹호하며, 추첨이야 말로 민주주의라고 갈파한다. 이들의 주장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두 급진적인 철학자들의 기행일 뿐이라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읽어 보시길 권한다. 마넹은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거쳐 17~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과 독립전쟁을 거친 미국의 건국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추첨제와 선거제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상세하게 검토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추첨제가 완벽하게 정치적 주제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러한 마넹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여러 낯선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추첨제=민주주의, 선거제=귀족주의라는 주장을 접하게 될 때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주장이 15세기 이전까지 정치학의 일반적 공리였다는 점이며,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몽테스키외나 루소 역시 이러한 견해를 잘 알고 옹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선거제는 투표자와 대표자의 간극을 극복할 수 없으며, 탁월한 자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항상 자연귀족제로 향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당대의 엘리트들은 추점을 배제하고 선거를 선호하는 것이 질서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미국건국과정에서의 논의들을 통해 선거가 세습 귀족과는 다른 형태로 특권층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상세히 입증하고 있다.  

마넹이 아테네와 중세도시국가들이 추첨제를 자기검열과 심사라는 두 가지 상이한 방법으로 어떻게 보완하고자 했는지를 설명하며, 아테네 시민들이 전문가에 의한 통치의 위험과 그것을 어떻게 피하고자 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지점에서는 지금 우리의 문제들과도 겹쳐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추첨과 선거라는 대립구도의 검토는 현대 정치에서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라는 대립구도보다 더 발본적인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진다. 결론적으로 다소 엉뚱하고 생뚱맞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이 사실은 충분한 역사적-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는 클래식한 주장이었던 것이며, 마넹의 책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99%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친지아 아루짜.티티 바타차리야 지음, 박지니 옮김 / 움직씨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도 요 몇 년간 가장 인기있는(잘 팔리는?) 인문사회분야 주제 중 하나가 페미니즘 일 듯싶다. 하지만 쏟아지는 책들 중 상당수는 여성용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책들이거나,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가 된 여성적 차이에 대한 책들이다. 또한 우리 현실을 돌아봐도 각종 미디어나 기사를 통해 페미니즘이란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부족하다거나, 성공한 여성의 숫자가 적다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권리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페미니즘이란 의제를 사회적 이슈화하고 아젠다를 만들어 가는 이들은 절대적 다수가 중상류층 이상의 소위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이들이다. 그러다보니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문제와는 거리가 먼 식자층 여성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99% 페미니즘 선언]이 말하는 바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정체성 정치의 하나로, 또는 기껏해야 그 정체성의 교차성의 문제로 페미니즘을 다루는 기존의 입장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이든 그것은 선이고 옹호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은 지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대다수 여성을 포함한 우리의 현실의 불평등을 낳고 강화하는 주된 적은 바로 신자유주의이고 그것의 근원은 자본주의다. 그리고 그 신자본주의에 기생하여 수탈에 동조하고 기득권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기에 저자들은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 현실 기득권의 한 축으로 자리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대표사례가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나 페이스북의 여성COO인 셰릴 샌드버그 같은 여성들이다. 여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주류페미니즘의 흐름들과는 달리 저자들이 주장하는 99%를 위한 페미니즘은 보편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 보편성은 여성이 아닌 인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식의 공허하고 추상적인 보편성이 아니라, 인종적, 성적, 계급적 불평등에 맞서 현장에서 투쟁하는 보편성이요, 이 보편성을 통한 연대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지점을 탐색한다는 목표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적확하고 계발적인 주장들 속에서도 두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첫째는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과 같은 사회적재생산에 대한 노동의 이해에서, 마르크스가 이를 무시하거나 폄훼하였다고 혹은 아무리 잘 봐줘도 시대적 한계였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사실 이런 오해는 자율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오해이기도 한데, 마르크스의 가치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재생산노동이 가치를 낳지 않는다는 말은 일상용법에서 그 노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포획되지 않았다는 말이며, 때문에 이 영역을 재상품화 하는(예컨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노동화)게 맞을지 비상품화 영역으로서 저항의 영역으로 다루어야 할지는 전략적 숙고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계급투쟁에 대한 이해다. 책의 앞부분에서 논의되는 바와 후기에서의 이해가 약간 다른 뉘앙스를 주기는 하지만 계급투쟁이 마치 생산현장에서 노-자의 권리투쟁으로 국한되어 이해되고, 따라서 계급투쟁, 성적다양성투쟁, 인종투쟁, 여성해방투쟁이 모두 권리투쟁의 하나로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된다. 하지만 마르크스에게 계급적대란 단순히 서로 다른 계급들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계급 사회 구성의 바로 그 원리인 것처럼, 적대 그 자체는 단지 갈등하는 분파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계급적대에 기반한 계급투쟁은 이러한 갈등의, 그리고 그 안에 연루된 요소들의 바로 그 구조화 원리이다.

 이 사소한(?) 오해를 제외한다면 이 책이 갖는 미덕은 너무도 분명하다. 페미니즘이 특히나 미국식 페미니즘이 우리사회에 수입되면서 이러저러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처럼 평등을 위한 공동의 투쟁을 모색하는 99%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짧고 큰글씨인 데다가 11가지의 테제와 후기로 구성된 이 책은, 배경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하의 불평등의 가속화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모색이 미국 사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진행형인 상황이기에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어질 편지는 아닐 것이다.

     가독성이 좋은 번역임에도 이상한 번역 하나 aura”아우라오라라고 음독한건 뭘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