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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머니는 그냥 당신의 이야기를 쓰면 될 거라고 하셨다. 한 개인의 평범한 일생이 시대의 굴곡을 견뎌낸 삶 그 자체라면, 그 무엇보다도 진실된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배움은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해체되어 마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마리암과 라일라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내재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려보는 순간, 이 이야기보다 더한 이야기가 산재해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해진다. 그렇기에 그녀들이 당연하게 여기며 감내할 무수한 일생들 속에서 호세이니의 글은 우리에게 닿은 하나의 진실이 된다.
이 책은, 짐작했겠지만, 굉장히 슬프다. 단지 텍스트일 뿐인데 나는 그녀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눈을 찡그렸고, 숨을 쉬지 못했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문학적 실천이 가진 힘을 마주하기에 굉장히 좋은 책이다. 때로 책은 문학적 실험의 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아주 강력한 메세지를 품고 있으니까. 인간은 왜 인권을 말해야 하고, 지금의 인권이 불완전하다는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하는가. 누가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난 그 답으로 이 책을 이야기 하게 될 것 같다.
여성 캐릭터들을 투톱으로 세웠다는 점이 돋보인 책이기도 하다. 전쟁과 폭력의 이면, 남겨진 이들에 대한 글, 그리고 그런 주제의 좋은 글은 그리 흔치 않다. 그래서 이 책이 유의미하다. 작가는 두 여성 주인공을 미화하느라 종이를 소비하지 않고 동정으로 글을 가득 채우지도 않는다. 작가는 중도를 지킨다. 그렇기에 캐릭터들이 살아난다. 너무 오랜 시간 사생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했기에 차라리 부르카 안에서 자유를 느꼈다는 마리암, 자신이 남편에게 이러한 폭력을 당해도 싼 인간인가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해 아니라고 자답하기에 이십여년이 걸린 마리암. 적법하지 않게 태어난 삶에게 어울리는 적법한 마지막이란 말이 얼마나 사무치게 아프던지. 라일라의 운명 역시 기구하기 짝이 없었지만 타리크와 재회했기에 일말의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문득, 다시 서글퍼진다. 타리크와 재회하지 못한 라일라들이 얼마나 더 많을지 나는 모르므로.
그리고 가장 슬픈 것은, 아프가니스탄에 아직 탈레반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은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더욱 잔혹하고 끔찍하다.
타리크의 이야기를 들으며 라일라는 자신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섬유질이 분리되어 아래로 툭 떨어지는 썩은 사과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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