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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임팩트
이주선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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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살고 있으면서, 혁신적인 기술을 제법 거부감 없이 수용하면서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시합이 펼쳐졌을 사람들은 비로소 실감했던 같다. AI 여기까지 왔구나. 정말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일이 스크린 밖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그리고 5년이 지났다. 로봇 청소기가 보편화되거나, AI 기능이 탑재된 물건들이 주변에 많아지긴 했지만 우리 곁의 기계는 여전히 단순 가사일 등을 돕는 해결사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묻는다. AI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때는 언제가 될까?




(화살표가 참고 문헌 리스트 시작 지점이다.)



AI 임팩트』는 평소 인공지능이나 미래에 크게 도약할 산업 등에 약간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에겐 훌륭한 입문서일 것이다. 어려운 내용을 모두가 이해할 있게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성취하기 어려운 능력인데, 저자는 AI 시작점부터 현재 상황, 그리고 나타날 있는 사회적 변화를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특히 말미에 기재된 무수한 참고문헌 리스트를 눈으로 훑기만 해도 그의 노고와 열정이 느껴짐과 동시에 이렇게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 괜스레 죄송스러운 마음이 정도다.



(진입장벽이 높아보이는 목차지만, 템플릿이 너무도 이과스러워서 어쩐지 귀엽게 느껴진다.)



책의 내용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인공지능 연구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단 사실이다.

1988~1993년에 있었던 인공지능의 겨울 인상깊었다. IT 내의 분야가 서로 분명히 연결된 접점이 있음에도, 섹터들의 발전 속도가 다르기에 나타난 현상으로 읽히는데, 모두가 언젠가 다가올 미래라고 인지한다 하더라도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수용능력이 공존해야 미래가 비로소 우리에게 도달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있었다. 그렇기에 미래학자 커즈와일이 제시한 2045 인간을 능가하는 초지능의 도래가 진실로 이루어질 제법 궁금해진다.




(상당히 무시무시해보이는 경고 문구가 눈에 띈다.)



(이다지도 전문적인 냄새가 풍기는 삽화라니!)



그렇다 한들 내가 AI 연구원이 아닌지라, 세속적인 관심사는 아무래도 AI 사용 확대에 따른 고용시장 변화일 터였다. 그것이야말로 피부에 와닿을 변화일 테니까. 저자는 이에 대해 중립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자동화로 인한 일의 통폐합 과정에서 업무의 세분화가 수익성에 도움이 되면, 기업은 업무 수를 늘릴 것이므로 일자리가 감소하지 않을 수도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기에도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다른 많은 직업이 파생되었다는 것을 돌이켜 , AI 발전에 따른 고용시장 축소가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섣불리 단언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발언이었겠다며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지라, 기술의 발전을 가장 민감하게 수용하고 혁신을 재화로 바꾸어 내는 데엔 기업들이 제일인 하다.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플랫폼화되는 것을 우린 지금 지켜보고 있다. 이들에게 AI 시스템이 필수재가 되는 순간이 언제일지, 그리고 데이터 이동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지켜보며 나의 포지션을 정하는 것이 개인이 미래를 대비할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지.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는 사람이 어려워하는 바를 인공지능이 사람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잘하지만,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바를 인공지능이 따라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상태라는 것이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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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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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가 『긴 호흡』에서 말하기를, '책에는 편향과 열정이, 그리고 저자의 결함이 담긴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고 책을 엮어낸 저자 설혜심은 애거서의 여러 책들에서 애거서의 흔적을 찾아낸다. 집을 사랑했던 그의 기호, 약제사로 근무했던 애거서의 경력,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약점을 덮기 위한 책의 인용 따위를. 그리고 메리 올리버의 인용은 책의 저자 설혜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지점은 애거서 본인의 목소리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저자 설혜심의 문장에선 뿌듯함과 애정이 동시에 드러날 때가 있었으므로. 쉽게 쓰여진 글이라 해서 항상 쉽게 읽히거나, 어렵게 쓰인 글이라 해서 쉽지 않게 읽히라는 법은 없으나, 애정이 담긴 글은 늘 독자로 하여금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책장을 어떻게 넘기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여러 책을 열 여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 바라보는데, 아무래도 저자가 역사가이기 때문인지 15번째 채버인 '미시사'가 특히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 까닭은 이 책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을 매개로 하여, 20세기 초의 영국을 들여다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아니라면 영국사를 전공으로 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저자의 경력 때문일 수도 있고, 저자가 서머싯 몸의 말을 인용하였듯 추리소설 자체가 '사회사가에게 매우 귀한 자료'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호텔을 통해서도 독특한 영국의 모습을 담아내었고 배급제를 통해 어려웠던 전시/전후 상황이 어떻게 애거서의 추리소설에 녹아 있는지를 함께 확인해주었다. 이 모든 과정은 상당히 부드럽고 친절하게 진행되었던지라, 나는 저자의 손을 잡고 20세기 초의 영국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창백한 말』을 읽을 때나, 아서 코난 도일이 심령술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 등을 들을 때 나는 우생학/골상학이 유행했다는 것은 어떻게든 납득이 되는데, 왜 심령술이 그 시대에 그토록 유행했었는지를 궁금해 했던 적이 있았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를 넘어 산업화된 영국에선 중/근세에 자행된 마녀 사냥이 끝났을 무렵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심령술에 대한 그들의 맹목적인 몰입은 더더욱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책을 통해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정확히 말하면 윌리스의 주장이긴 하다). 탐정이나 심령술사의 일은 궁극적으로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는 작년 이맘때에 본 일본 법의학 드라마 《언내추럴》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했다. 현대의 우리가 누리는 법의학적 요소가 없던 사회였다면 사람들의 간절함이 신비와 결함했을 때 심령술로 화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처음 읽은 건 중학생 때였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사랑하는 나에게 친구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추천해주며 시공간을 넘은 인연이 시작됐다. 지금도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을 꽤나 아끼는데, 이는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다. BBC 드라마 닥터후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이 몇억년 후의 우주에서도 여전히 잘 나가는 베스트 셀러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앞서 말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저자의 탄생 125주년을 기리며 2015년 3부작 드라마로 재탄생한 바 있다(이 드라마는 정말 수작인지라, 책을 읽든 읽지 않았든 모든 분께 추천한다). 어디 그뿐인가. 책에서 말했듯 2000년대 초반부터 영국 ITV 드라마 <Agatha Christie's Marple>에서 우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을 영상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추리극인 것을 감안하면 호흡은 다소 느리지만 빠져드는 드라마다). 그러나 여기서 저자가 묻는다. 이것이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

애거서 크리스티 역시 신이 아닌 사람인지라,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그의 책을 볼 때 우리는 영국이 지닌 제국주의적 한계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애거서의 명확한 한계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설혜심 작가가 말했듯, 애거서의 소설엔 '영제국의 헤게모니를 자연스럽게 내재화하는' 요소가 군데군데 (책에 따라선 너무도 많이) 녹아 있고, 이러한 요소들이 자가복제를 통해 무한히 증식할 때,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강대국에게서 벗어나 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종속되기 쉽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이런 점에 있어선 시선은 다소 다르겠으나 『클레오 파트라의 바늘』을 추천한다).

비가 오는 날 기꺼운 마음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큰 행운인 지 모르겠다. 따분할 수도 있을 법한 내용을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테마와 함께 읽어내려가니 조금쯤 눈높이 교육을 받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다음엔 저자의 다른 책에 도전해 보고 싶다. 일단 책 날개에 있는 『소비의 역사』로 시작해 볼까? 이 책이 내게 어떤 세상을 열어줄 지 벌써부터 설레고 궁금하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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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어떻게 아이콘이 되는가 - 성공으로 가는 문화 마케팅 전략
더글라스 B. 홀트 지음, 윤덕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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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퍼포먼스 마케팅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지만, 브랜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궁금했던 『브랜드는 어떻게 아이콘이 되는가』를 읽었다. 이 책이 지닌 아쉬운 점을 딱 두 가지 꼽아보자면 첫째, 저자가 미국인인 만큼 (아무리 글로벌 브랜드라 해도) 미국 브랜드를 파헤쳤고, 이에 따라 미국 사회/문화와 얽힌 지점을 집중적으로 풀어냈기에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해가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이며 둘째, 이 책이 미국에선 2000년대에 발행되었으므로 우리에겐 다소 늦게 도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이 책은 ‘좋은 브랜드’를 이루기 위한 기본 전제를 ‘상품’이 아니라 ‘문화’로 돌려놓는 이론적인 요소를 다루고 있기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작금의 한국 사회/한국 마케터에게도 유의미하다고 본다. 특히 몇 초 짜리의 범퍼광고에도 사활을 걸어야 하는 마케터들이 겪는 혼란을 축소하고, 그러면서도 좋은 실적을 내는 데에 필요한 근본적 변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마인드 셰어 브랜딩’, 즉 기업이 생산하는 차별적인 이미지 형용사를 끊임없이 주입받는 형식의 광고에 익숙하다. 최근 들어 문화적 요소에 치중하는 브랜딩이 늘어난 것 같긴 하지만, 대중문화와 사회적 신화를 활용하여 자리매김한 아이코닉 브랜드가 된 한국 기업을 나열하긴 어렵다. 물론 브랜드 매니저들을 모두 JRR 톨킨이나 조지 루카스로 변신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저자 역시 이렇게 이야기한다. ‘브랜드가 대부분의 문화산업 상품과 같이 단지 오락만을 제공한다면, 그 브랜드는 처음부터 반쪽짜리가 될 것이다(책 398pg).’ 브랜드 매니저, 혹은 기업에게 요구하는 ‘문화’란 문화예술가들이 창조하는 환상 세계가 아니다. 대단히 창의적일 필요도 없지만, ‘가장 좋은’ 것들만을 엮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임을 인정하고, ‘사회의 가장 괴로운 갈등을 해결하는 신화를 보여줌으로써 문화 아이콘(책 399pg)’이 될 줄 알아야 한다. 무작정 유행하는 트렌드를 뽑아 똑 같은 형식을 반복/재생산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이전에 읽은 데이비드 오길비의 『광고 불변의 법칙』이 떠올랐다. 오길비는 더글라스 홀트와 같이, 문화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명시하지 않았으나 오길비 역시 비슷한 전략을 취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브랜딩에 관심이 있는 (예비)마케터, 혹은 (예비)기업가 등이라면 『브랜드는 어떻게 아이콘이 되는가』를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세상을 선도하는 브랜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좋은 상품을 팔리는 아이콘으로 만들기 위한 PR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이론서이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을까, 너무 어렵지 않을까 고민할 수 있을 듯 한데, 책 내에서 여러 도식을 활용하고 있는지라 제법 친절하단 생각이 든다. 아울러 메인 분석 요소가 광고이기 때문에, 유튜브를 통해 해당 브랜드의 광고를 검색해 보며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식으로 소개해볼까, Don't Pa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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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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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젠가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머니는 그냥 당신의 이야기를 쓰면 될 거라고 하셨다. 한 개인의 평범한 일생이 시대의 굴곡을 견뎌낸 삶 그 자체라면, 그 무엇보다도 진실된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배움은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해체되어 마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마리암과 라일라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내재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려보는 순간, 이 이야기보다 더한 이야기가 산재해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해진다. 그렇기에 그녀들이 당연하게 여기며 감내할 무수한 일생들 속에서 호세이니의 글은 우리에게 닿은 하나의 진실이 된다.


    이 책은, 짐작했겠지만, 굉장히 슬프다. 단지 텍스트일 뿐인데 나는 그녀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눈을 찡그렸고, 숨을 쉬지 못했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문학적 실천이 가진 힘을 마주하기에 굉장히 좋은 책이다. 때로 책은 문학적 실험의 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아주 강력한 메세지를 품고 있으니까. 인간은 왜 인권을 말해야 하고, 지금의 인권이 불완전하다는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하는가. 누가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난 그 답으로 이 책을 이야기 하게 될 것 같다.


    여성 캐릭터들을 투톱으로 세웠다는 점이 돋보인 책이기도 하다. 전쟁과 폭력의 이면, 남겨진 이들에 대한 글, 그리고 그런 주제의 좋은 글은 그리 흔치 않다. 그래서 이 책이 유의미하다. 작가는 두 여성 주인공을 미화하느라 종이를 소비하지 않고 동정으로 글을 가득 채우지도 않는다. 작가는 중도를 지킨다. 그렇기에 캐릭터들이 살아난다. 너무 오랜 시간 사생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했기에 차라리 부르카 안에서 자유를 느꼈다는 마리암, 자신이 남편에게 이러한 폭력을 당해도 싼 인간인가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해 아니라고 자답하기에 이십여년이 걸린 마리암. 적법하지 않게 태어난 삶에게 어울리는 적법한 마지막이란 말이 얼마나 사무치게 아프던지. 라일라의 운명 역시 기구하기 짝이 없었지만 타리크와 재회했기에 일말의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문득, 다시 서글퍼진다. 타리크와 재회하지 못한 라일라들이 얼마나 더 많을지 나는 모르므로.


    그리고 가장 슬픈 것은, 아프가니스탄에 아직 탈레반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은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더욱 잔혹하고 끔찍하다.




 

타리크의 이야기를 들으며 라일라는 자신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섬유질이 분리되어 아래로 툭 떨어지는 썩은 사과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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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더 미드와이프
제니퍼 워스 지음, 고수미 옮김 / 북극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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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콜 더 미드와이프>는 그런 세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이다.


  1900년대 영국을 잘 아는 사람이라 해도 조산사를 쉽게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세상,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의 영국이 훨씬 보편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처칠과 같은 유명인이 영국을 휘어잡았고 서양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 냉전이 한창이었을 무렵에도 영국 런던에서 고군분투 하던 사람은 당연히 있었다. 소설보다 더욱 극적이고 마술같은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그런 평범한 일상을 살아나가던 사람들 가운데에 <콜 더 미드와이프> 책의 저자인 '제니퍼 워스' 역시 있었고, 현대의 우리가 잊어버린 직업을 지니고 삶을 일궈나갔다.


  이 책의 진입장벽은 사실 높지 않다. 자신이 겪은 실화를 그려낸 것이기에 쉽게 읽힌다. 특정 직업을 다루고 있지만 아주 난해한 어휘들이 등장하는 일도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이 조금은 까다롭게 느껴졌던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로, 내게 조산사라는 직업은 굉장히 생소하다. 정정하자. 그 직업이 생소하다기 보다는, 단어 자체가 어색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산파'가 있었지만 그녀들은 직업 여성으로서 존재했던 이들이 아니기에 더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둘째로, 제니퍼 워스가 본래 글을 쓰던 사람이 아니기에, 책의 구성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은 편이다. 통일성이 어긋나는 내용도 중간에 없잖아 등장한다. 조금 더 다듬으면 드라마틱하지 않았을까 싶은 내용도 몇 군데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영국 드라마를 좋아하여 동일한 드라마의 제목을 이미 들어보았기 때문에 흥미가 갔으며, 운이 좋게도 북극곰 출판사의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다지만 일반 독자들이 쉽게 선택할 만한 책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미드와이프라는 영어 단어를 조산사로 1:1 치환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영어 그대로 굳이 쓸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쨌든, 이 책은 몇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훌륭하다. 스토리 텔링 면에서 부족하다고 지적하였으나 서투르더라도 사실로만 채워진 이야기이기에, 문자적인 내용이 전달하는 감동은 절대 적지 않다.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 나가는 집이 있다는 훈훈한 이야기, 무뚝뚝해보이기만 했던 수녀님이 다른 이를 섬길 때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은 이야기 이면의 교훈을 독자 스스로 떠올리고 미소짓게 만든다. 


  물론 따뜻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폭력이 빈번히 일어나고 위생적이지 못한 집의 끔찍한 내면을 때로 비추며, 종교라는 이름 하에서 벌어진 비인도적 행위를 고발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복지가 정착하기 전의 영국사회가 빈민구제를 어떻게 했는지를, 일부 언급하기도 한다. 슬픈 이야기들이지만 나는 과거를 기록한 글에서 이런 슬픈 부분의 가치를 높게 사고 싶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계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를 되새길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때로 작가의 귀여운 일탈이 나타나기도 하는 책이기도 한데, 이러한 감성적 부분만 건드리진 않는다. 조산사라는 직업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부분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 말이다. 조산사와 수녀님들, 그리고 그녀들에게 진단받는 환자는 모두 여성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여성 인권에 대한 부분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일단 한 여성이 일생동안 스물 몇 명의 아이를 낳는 것, 혼혈아 소동 등에선 피임이 여성에게 굉장히 중요한 삶의 한 요소일 수 있음을 알린다. 어찌되었든 불륜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고 나니 드라마 버젼의 <콜 더 미드와이프>를 절로 만나보고 싶어진다.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을 연기했는지도 궁금하고(표지로 대강 짐작할 수는 있지만 확실치는 않으니), 책을 어떻게 영상화하였는지도 궁금하다. 어떻게 각색되었을지도 당연히 궁금하며, 영국 드라마 특유의 냉소가 이 책에까지 스며들었는지의 여부도 궁금해진다. 인기가 좋아 다섯 시즌이 나왔다고도 들었으니 궁금증은 당연히 증폭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조만간 드라마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여자가 산고를 견디다가 죽었는지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소모품이었기에 출산 중 사망한 여자의 수는 헤아리지도 않았다.

살다보면 이따금 부지불식간에 사랑이 당신을 붙들고, 당신 마음 속 어두운 구석을 밝게 비추고, 환한 빛으로 그곳을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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