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양철학인가 - 개정판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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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시절 윤리 시간에 제일 싫어했던 철학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정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이황과 이이를 꼽을 것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이발기승일도설, 기발이승이도설 따위를 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국사 선생님이었던가. 인터넷 강의에서 본 선생님이었는지, 학교 선생님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진 않지만 어떤 선생님께서 ‘일생을 바쳐 이룩한 이론을 어떻게 한 시간 동안 모든 내용을 가르치고, 너희가 한 번에 받아들이겠느냐’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도 같다. 나 역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나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었으니 유학자들은 밉기만 했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유학만은 아니다. 법가, 유가, 불교, 도가, 등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윤리와 작별한지 2년, 혹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간 나름대로 배웠던 내용을 곱씹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구절이 많고 어렵기만 하다. 윤리 시간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을 것 같다, 싶었던 내용은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웠고 내가 왜 윤리를 하고 있는지 넋을 놓게 만들었던 부분은 여전히 어려웠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상가를 꼽으라면 장자를 이야기할 것이다. 장자의 사상은 매력적이다. 이상적이고, 은자의 것이기에 현실에 직접 적용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속세에 찌들어 있는 우리에게 일갈하는 그의 한 마디엔 당당함이 묻어있다. 그 점이 참으로 부럽다. 마치 알렉산더 앞에서 그림자를 드리우지 말고 비켜달라 말했던 디오게네스처럼, 장자에겐 그 비슷한 면모가 있는 듯하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이냐 묻는 호접몽 역시 나는 좋아한다. 일견 허무주의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인 까닭이다. 내가 꿈속의 나비이면 어떻고 나비의 꿈속에 사는 인간이면 또 어떠하랴. 나는 어쨌든 열심히 살고 싶다. 이 긴 꿈에서, 마치 환상과도 같았을 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 진정한 나에게 나는 꿈속에서도, 허망하게 사라지는 꿈속에서조차 열심히 살았노라 말하고 싶으므로.



 장자도 불교도, 법가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다지만 주자학은 여전히 어렵다. 짤막하게 말하자면 이(理)는 ‘절대순수, 영원의 가치, 최고선’이며 기(氣)는 ‘정화가 필요하되 세계를 변화시키는 자기활동의 주체’라고 한단다. 퇴계와 율곡은 주리론과 주기론의 선구자였다고 하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와 기의 권능에 대한 논쟁을 벌였던 것이라고. 내 짧은 끈으로는 여전히 힘들다. 



 내가 이해한 대로 설명을 해 보자면 이렇다. 이는 일종의 투명인간이다. 분명히 존재하는 의지이되 눈으로 그 실체는 확인할 수 없다. 기는 옷이다. 유행에 따라 디자인의 변동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는, 동시에 이가 그 옷을 입음으로 이의 존재를 증명하는 주체가 된다. 이와 기는 이런 사이인데, 퇴계는 투명인간인 이가 옷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율곡은 기라는 옷, 혹은 유행에 따라 이가 규정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퇴계는 옷을 보고 옷을 선택한 이의 의지를 읽었다면, 율곡은 옷을 보고 이가 이런 취향을 지니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해석자의 주관을 보다 중시했던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내 삶이 유교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 건 아닐까. 이 책에서 말하듯 ‘장소와 의례처럼 드러난 것 가운데 남아있는 것은 없다.’ 관혼상제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수많은 사소함조차 점점 유교와 멀어져 가고 있다. 부모님께 하는 존댓말이 슬그머니 사라진 일, ‘공경’이 무조건적이 아니라 ‘공경받아 마땅한 이에게만’ 하겠다는 사회적 태도…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지은이는 한말의 지사들에게서 비극적 영웅주의를 읽는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종말을 알면서도 뛰어들었던 그들은 아름답다. 같은 상황일 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단순한 가정임에도 쾌히 그러리라 말하지 못하는 내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구한 말, 많은 선비들은 신식문물을 들여오는 서양 사람들을 향해 ‘서양 오랑캐’라며 배척했다. 기계 문명 속 비어있는 본질을 포착했던 것은 아닌가, 과연 우리가 무조건 받아들인 그들의 문화가 옳기만 한 것인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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