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바늘 -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
김경임 지음 / 홍익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 그들만의 리그



 7000페이지의 마지막 책으로 무엇을 읽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였으니 도서관과 관련한 책을 읽을지, 본질적으로 책을 읽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이니 책에 관한 책을 읽을지, 강력한 추천을 받았던 지와 사랑을 읽을지, 등등. 그러다 결국 잡은 책은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다.

 작년 7월, 한창 재수를 하다 혼자 본 영화가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그 주인공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은 사실 작년에 초반부만 읽었었는데, 오벨리스크부분을 읽고 난 후에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었다. 이 영화는 본격적인 내용 진행에 앞서 파리의 풍경을 연작 사진처럼 보여주고 넘어간다. 그 때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역시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것은 이제 파리의 한 배경으로 삼켜졌으니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는 낭만적 광장으로 비춰졌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그곳에서 있었던 추억의 한 파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우디 앨런 감독은 이 정경을 담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 오벨리스크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이집트인들은 이 영화를 볼 때 무얼 느낄까, 싶었다. 중국인이 일본의 사진을 찍는데 그 속에서 약탈된 우리나라의 탑이라도 눈에 띈다면 난 어떻게 반응할까, 싶었다.

 치유하는 글쓰기에서 내 꿈에 대해 적을 때 나는 한국의 문화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썼었던 것에 대한 연장선으로, 이 책을 마지막으로 삼고자 했다. 어렸을 때 MBC에서 진행한 74434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서 슬퍼했던 기억도 나고, 가족들과 간 경주 여행에서 선덕여왕릉을 보아야 한다고 내가 우긴 끝에 찾아갔던 기억도 난다. 후자의 경우 내게 있어 특별한 기억이다. 지도상에 표시는 되어 있는데 길에 제대로 된 이정표가 없어 부모님도, 동생도 찾지 말자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가야겠다고 우겼고, 차로 2~3번 가량 빙빙 돈 끝에 찾았다.

 차로 갈 수 있는 길도 아니었다. 산 속에, 그야말로 잡초가 무성하고 길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곳에 선덕여왕릉이 있었다.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이 적힌 거대한 비석도 있었다. 이끼로 범벅이 되어 있고, 한자로 가득해서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것 같다. 아무 설명도 없어서 아직까지 그 비석이 무얼 의미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 이후 보수를 했다는 소식은 어렴풋 들었다. 그리고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제대로 조치가 취해지지 못한 문화재를 내 눈으로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모두 제대로 마련된 문화재, 유적지에만 찾아간다. 그리고서 문화재를 반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반환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일단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재를 소중히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과연 그러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재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우리는 얼마나 아끼고 있는가? 문화재 환수 운동은 왜 적극적으로 퍼지지 않고 일부분에서만 맴돌고 있는가? TGV와 의궤는 왜 제대로 협상이 되지 못했는가? 일본에 약탈된, 혹은 자발적으로 팔린 문화재는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의 역사적 가치는 왜 피부로 와닿지 않는가? 박물관은 어째서 마냥 어렵기만 한 장소인가? 왜 경복궁이 단순한 소풍의 장소인가? 등등. 마치 미궁 속에 빠진 질문들처럼 느껴지는 것들.

 책을 읽다 보면 매 구절이 아프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마블을 인테리어 장식을 위해 떼어간 외교관이 있는가 하면, 한 인간을 서커스 쇼로 활용한 유럽인들도 있다. 최초의 인권 헌장으로까지 평가될 수 있는 키루스 칙령은 깨끗이 무시된 채, 정말 한 마디 언급도 없이 학교에서는 마그나 카르타를 가르친다. 트로이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알려진 슐리만 역시 내게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어렸을 때 읽은 내용을 토대로 꿈을 키운 불굴의 고고학자처럼 알려진 그의 참모습은 참으로 허탈했다. 발굴이 아니라 발굴할 수 있는 토대를 완전히 어그러뜨렸으며, 아무 근거도 없이 보석에 헬레네를 운운하며 가치를 높이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남자였을 뿐이다. 

 유네스코에 대한 언급이 참 많았다. 권위 있는 국제기구이지만 그 법에 강제성이 없다. 국제기구이다 보니 강제성을 부여하기도 어렵다는 생각도 들지만, 책을 읽다 보면 심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선 우리 역시 동등한 입장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의 가치를 지닌 물품을 보유하지 못하다 보니 거래에 있어 상대적 약자이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러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많은 박물관들은 쉽사리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읽는 내내 아직도 서방 국가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마련해 뛰고 있는데, 한국은 기웃거리는 비주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끼리만 잘 살면 되지 뭐’라고 말하기엔 세계화가 너무나 빠르게 진전되었고, 그들은 우리의 문화재를 갖고 있다. 그것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지, 정말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한류를 통한 한국 문화 전파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의 과거가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알리는 한류를 일으켜선 안되는 걸까. 

 문화재는 국력과 같다고 쓴 이 책의 말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또한, 우리의 것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가치를 알아줄 사람은 없다. 우리의 관심도 보다 높아질 필요가 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한 번쯤 진정성 있는 교육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고, 박물관이 보다 친근한 장소로 바뀌면 좋겠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과 같은 책을 통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논란거리라는 것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서구에 편중되어 있는지도 한 번쯤 깨달았으면 좋겠다. 강자인 척 하는 약자를 탈피하기를. 마음 아픈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취업과 경제도 중요하지만 잃어버린 문화재도 마음 써주기를. 여러 가지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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