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타난 예수, 성령, 하나님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홍종락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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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망망大海에서 신을 길어 올리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구약을 접했을 때 느낌이 어떠셨을까? 보자마자 거대한 구약의 세계가 확 들어왔을까? 아니면 헉 하고 그 분량과 깊이에 좌절하셨을까? 아마도 으로 시작해서 으로 받으셨겠지요.

일평생 구약은 힘든 책이고 복잡한 책이고 기피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예수이야기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기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저자는 구약의 망망대해에서 예수를 소환합니다. 성령을 소환하여 구약의 바다를 헤엄치게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바다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소환하여 신구약의 세계를 품게 합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성서학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각 주 하나 없이 책을 완성하겠다는 각오로 평생의 작업을 이 책을 통해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구약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니, 구약을 통해 자신을 사역을 깨닫는 순간 어떤 느낌이셨을까? 동일하게 성령. 하나님이라는 광활한 신학의 주제를 구약속에서 찾아 헤매고, 발견하는 일은 광활한 말씀의 역사속에서 엄청난 광맥을 찾는 모험이자 기쁨입니다.

어쩌면 예수께서 구약을 통해 자신의 사역과 삶을 이해하셨던 것처럼 독자들도 구약의 바다에서 예수,성령,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광대한 산맥을 찾게 될 것이고, 이 모험은 독자들로 하여금 신약이라는 보이는 빙하가 아니라, 바다밑에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구약의 광활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히브리 성경은 바로 예수께서 읽으신 말씀이자 그분이 아신 이야기들이며 그분이 부르신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히브리 서경은 그분의 인생과 우주와 모든 것에 대한 견해를 형성했던 지혜와 계시와 예언의 보고이다. 여기서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사명의 목표를 발견하셨다”(p13)

 

성령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할 때 과연 무엇을 구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가? 그리스도와 신약성경을 모른 채 성령을 제대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성경이 알려주는 성령의 능하시고 신적인 충만하심을 온전히 알 수 없다”(p333)

 

내가 볼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주제는 오래전부터 조직신학적으로나 주제별로, 또는 순수하게 개인 경건의 차원에서 다뤄졌을 뿐, 구약성경의 내용과는 대체로 연계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성경,특히 구약성경의 주요한 관심사에 해당되는 주제임이 분명하다” (p524)

 

구약의 망망대해에서 엄청난 광맥을 찾아들어가는 모험을 이제 시작해 보자. 주의할 것은 광맥을 찾을 때 과연 이 책을 덮을 수 있을지. 확신컨대 평생 당신의 책상위에 성경과 함께 놓여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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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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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자신의 꿈은 접어둔 채 16년째 라이프잡지사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월터 미티. 해본 것도, 가본 곳도, 특별한 일도 없는 월터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상상! 상상 속에서만큼은 제임스본드보다 용감한 히어로, ‘천상의 로맨틱한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어느 날, ‘라이프지의 폐간을 앞두고 전설의 사진작가가 보내 온 표지 사진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당장 사진을 찾아오지 못할 경우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 월터는 사라진 사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연락조자 닿지 않는 사진작가를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상상이 현실이 된다.

어쩌면 영화 주인공 월터의 일상처럼 매주 교회설교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더 이상 싱그럽지도 생동감을 주지도 못한다. 그리고 거대한 고목의 그늘밑처럼 머물때는 시원하기 한데 영혼에는 더 이상 생동감을 제공받지 못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설교자들의 복음에 대한 시적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산문체적인 메시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설교는 정치인들이 발표하는 담화문도 아니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문도 아니다. 설교는 교훈과 답답한 현실속에 살아가는 청중들에게 성경의 세계에 대한 꿈과 상상을 꾸게 하는 시간이고, 이 상상은 우리들의 삶에 강력한 삶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저자인 월터는 설교자의 임무는복음의 강력한 역동성과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래서 듣는 이들의 삶의 평형을 뒤엎어 놓는 상상력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위해서는 산문체의 형식이 아닌 시적 세계의 강력한 질문과 새롭게 보는 시각 그리고 새로운 대안에 대한 상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설교자가 일상의 밋밋한 일상속에서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나라를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몇 가지를 제시하면서 시적세계로 들어갈 때 설교의 역동성은 강력하게 듣는 이들속으로 침투하게 될 것이다.

첫째, 마비와 통증으로 대변되는 죄책과 치유의 실재를 다뤄야 한다. 설교자는 삶의 일상속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는 죄책을 집중하지 않고 넘어가려 한다. 그러나, 죄책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 언저리에 기생하고 있는 수 많은 죄의 파생상품들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그럼에도 직설적인 화법은 서로에게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저자는 성경이 사용하고 있는 시적언어들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죄책감의 현장을 보게 하고 깨닫게 할 뿐 아니라 이것을 온전히 치유할 수 있는 복음의 치유의 말씀과 확신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를 통해서 내 삶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의 근원을 보게 되고, 그것을 복음을 통해 회복할 자신감을 같게 된다.

 

둘째, 소외와 분노로 대변되는 현대인들의 왜곡된 아픔과 고통을 다뤄야 한다. 많은 이들은 교회공동체는 소외와 분노가 아닌 참여와 용서를 경험해야한다. 그런데 설교를 듣는 이들이 스스로를 소외와 분노의 상태로 만들어 말씀과 공동체의 참된 가치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모습은 주관적의식이라는 습관을 통해 습득되는데 즉, 타자를 온전히 상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상황 그리고 처지에만 골똘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배에 전적 타자인 하나님을 온전히 살아계신 분으로 상상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메시지도 자신의 상황에 갖다 집어넣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설교자는 이런 모습에 빠져 소외와 분노가 가득한 이들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인격적이며 대화하며 공감하는 분임을 시적인 세계를 통해 전해야 한다.

 

셋째, 쉼없는 상태와 탐욕이라는 현대인들의 가장 강력한 욕망을 끊어야 한다.

성서는 창조기사부터 계시록까지 인간의 탐욕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탐욕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심지어 예배마저 탐욕은 실용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한다. 창조는 끊임없이 하나님마저 쉼이 필요하신 분으로 묘사할 만큼 인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참된 안식과 쉼이라고 강조한다. 현대인들의 삶은 먹거리부터 잠자리까지 일을 위한 도구로 환원시켰다. 그렇기에 설교자는 복음의 정신이 하나님안에서 쉼과 만족이라는 강력한 하나님나라의 상상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저자는 설교자가 과감하게 이 세상의 메시지를 끊는 시도를 풍성한 시적인 세계를 통해 열어제쳐야 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 월터는 상상을 통해서만 지루하고 바쁜 일상을 이겨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해고라는 현실적인 압박은 상상을 현실로 이끌어 내게 하는 동기가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은 기쁨과 평안의 아이콘이 아니라, 지루하고 힘든 삶의 자리일 뿐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삶에 익숙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설교자는 하나님나라의 상상을 꿈꾸게 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 꿈은 정답을 알려주거나, 가르친다고 꿈꾸지 않는다. 설교자는 성서에 등장하는 시적세계를 통해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그의 나라를 꿈꾸며, 그의 나라를 갈망하며, 그의 나라를 내 삶에 실현시키는 자리에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시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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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신명기 UBC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전의우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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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힘으로 채무를 상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방치하는 것은 이런 고통까지 가보지 않은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도덕적 해이가 아닌가.”라며 금융위원장이 정부가 원금 1천만원 이하 대출을 10년 동안 상환하지 못한 159만명에 대해 원리금 전액을 탕감해주는 정책을 발표하자,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언론보도가 뒤따르자 이에 대해 소신발언을 한 것이다. 국가는 개인소득 3만불 시대를 열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과 소외층의 경제적 간격은 여름과 겨울처럼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미 사회에서는 채무 탕감” “파산신청과 같은 다양한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경제적 간극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접한 크리스토퍼라이트의 신명기주석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경제적인 문제점과 신앙인의 책임에 대해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신명기주석을 읽으면서 그 동안 구약의 주석에 가지고 있던 편견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알겠는데 그 말씀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와 적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구약의 신명기가 이렇게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가운데 적실성을 가지고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 실로 놀라웠다.

저자는 신명기를 언급하면서 구약의 심장 박동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신명기의 박동을 느껴 보라고 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심장이 박동수가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히브리 성경 전체의 생명과 리듬을 느낄 수 있다고 했던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 동안 신명기로 대표되는 구약의 율법서들을 힘들어 한 것 은 오늘 우리들의 상황과 너무나도 간격이 있는 시대의 산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토지법이나 제사법과 같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해서 되도록 패스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깨트리기에 충분하다.

 

신명기는 경계에 있는책이다 라는 말은 신명기가 쓰여진 의도를 충분히 엿 볼 수 있고, 다른말로 해석하면 이 시대처럼 그리스도인이 맘몬과 하나님 경계에 아슬아슬 하게 서 있은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오래된 신명기가 오늘 한국사회에 너무나 적실성을 가진다는 아이러니이다.

 

이 책은 단순히 주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함께 말씀이 어떤 적실성이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우리들의 삶 속에서는 어떻게 말씀이 오버랩되면 삶에 깊숙이 개입 될 수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광야 시대에 펼쳐진 이스라엘의 삶의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였지만, 머무를 땅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나안으로 움직여야 할 자리였다. 그렇기에 이들을 향한 신명기적 하나님은 훈련과 실패 그리고 책망과 회복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워 가시야 했다. 그렇기에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약속과 율법을 말씀하시고 권면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충분히 깨을 수 있을 뿐 있다. 또한, 극한의 간극이 있는 오늘 우리들의 삶은 새로운 신 광야 시대이다. 그렇기에 신명기의 말씀은 새로운 해석을 통해 우리삶에 적실성을 가져와야 하는데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깊이 있는 공감을 이뤄가고 있다.

신명기속의 모세의 음성과 하나님의 메시지가 동시에 울려퍼지는 무한 감동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 들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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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재발견 - 질문, 저항, 소통, 새로운 공동체
최주훈 지음 / 복있는사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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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교회에 촛불 들다. 이게 종교냐?

 


 

지난겨울 우리는 촛불모임을 통해 이게 국가냐?”란 질문과 저항과 소통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촛불모임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기록될 만한 평화적인 시민혁명이었고, 저항이었고, 새로운 나라를 향한 열망이었다. 촛불의 열망과 함성이 아직도 귀가에 맴돈다. 그런 일련의 시간속에서 한국교회 또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루터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한국교회를 돌아보려는 애씀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런 와중에 접한 최주훈 목사의 루터의 재발견은 표지부터 한국 사회의 열망을 오롯이 보여주는 듯 했다. “질문해라. 저항하라. 소통하라.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라.”4가지 주제가 루터의 종교개혁의 핵심이라는 것과 한국 사회가 지난 촛불모임을 통해 요구했던 것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에 반가움과 전율이 느껴졌다.

 

어쩌면 체코의 얀 후스가 1415년 화형당하면서 지금은 한 마리 거위가 불에 타지만 100년 후에 한 마리 백조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는 예언처럼 100여년 후 1517년에 루터는 종교개혁의 한 마리 백조로 세상에 등장한 것처럼, 한국 교회는 루터가 살던 시대보다도 훨씬 더 타락한 시대속에 놓여 있다. 손봉호 교수의 말처럼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한 기독교가 바로 현재 한국 개신교다라고 탄식할 정도로 제2의 종교개혁이 요구가 전방위적으로 강력하다. 이러한 시점에 그 동안 루터에 대한 예화나 역사적인 흔적만 보았는데 이 책을 통해 루터의 종교개혁과 그의 신학과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한 다양한 개혁적인 모습을 보게 되어 매우 반갑고 흥미롭다. 그러면서도 루터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개신교 후배 목사로 선배 루터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질문하라!!

신실한 믿음은 무엇일까? 저자는 루터를 시대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오늘날 우리들의 잣대로 보지 말고, 당시 문화적인 상황과 믿음의 상황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생각해서 루터를 바라봐야만 정확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당시 루터의 시대는 신실한 믿음이란 질문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맹신의 시대였다. ‘유령의 시대에서 하나님을 추구한 사람이라는 말처럼 그 시대는 유령의 존재들이 모든 사회에 떠돌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루터는 수도사에 입문하기도 했지만, 그의 운명은 수도원에 거할 동안 로마에 방문할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기대와 달리 로마 가톨릭의 타락의 모습을 직접 본 루터의 마음속에 이게 교회냐?라는 분노가 가슴깊이 쳐 올라 현실에 대한 타협이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 마음의 질문을 답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저항하라!!

누구 맘대로? 당시 가톨릭은 구원의 교리를 매우 촘촘하게 짜놓고 수 많은 사람들의 불안한 참회에 대한 해답으로 연옥을 만들어 돈을 삥뜯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누구도 쉽사리 종교권력에 대항하거나 저항할 수 없던 시기에 루터는 질문하면서 엿장수 맘대로 구원을 돈주고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거부한다. 그리고 성경연구를 통해 가톨릭의 연옥교리는 철저하게 반성경적인 것을 깨닫고 95개조 논조를 발표함으로 인해 종교개혁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특히 [독일 귀족에게 고함]의 논문에서 세 가지 장벽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린다. ‘당시 교회가 너무 높은 벽을 쌓아 스스로 갇혔다. 이 세가지 장벽은 하나,성직자와 평신도를 가르치는 벽이다. , 평신도 해석의 벽이다. , 공의회 소집권의 벽이다며 당시 폐쇄적인 가톨릭의 문제를 꼭 집어 권위의 문제로 귀결시킨다. 오직 모든 권위는 성서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은 다 평등하다며, 당시 독일의 제후들을 결집해 저항하려는 결의를 보인다. 그리고 가톨릭의 대척점에 선 교회 공동체는 바로 저항하는뜻을 가진 프로테스탄트로 불리게 되고 오늘날 개신교도의 이름이 된다. 그런데 과연 한국 교회는 저항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오히려, 종교 개혁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오늘날 믿음의 권위가 아닌 교권의 권위에 저항하는 저항 공동체가 새싹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것에 희망을 가진다.

 

소통하라!!

sns로 소통하는 한국사회는 광주혁명처럼 지역을 봉쇄한다고 해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세계 곳곳의 모든 사건과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개인들에게 전파되는 오늘날처럼 루터 역시 당시 라틴어 불가타성경으로 성경을 대중들로부터 통제하던 것을 인쇄술의 도움으로 오늘날의 sns처럼 무서울 정도로 독일전역에 ‘95개조 논제가 독일어로 번역되고 인쇄되어 퍼져 나갔다. 이는 당시 대중들의 언어였던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폭팔적인 반응을 가져온다. 이는 예배에서도, 성경공부에서도 민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고, 장전한 총에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했다. 이로 말미암아 더 이상 사제를 통해 소통이 아니라, 직접 성경을 접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꿈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한국의 교회의 개혁은 평신도들이 더 이상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읽고 연구하며 질문하고 저항해야 한다. 이는 루터가 제창한 만인제사장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새로운 공동체!!

그리스도인이란 루터에 의하면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교회자체가 구원을 매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께서는 개인뿐 아니라, 새로운 백성으로써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기에 각 개인은 교회공동체를 세워가는데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이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문제는 루터에게 불가능한 것이다.”고 로제는 루터의 교회관을 정확하게 피력하고 있다. 오늘날 가나안 그리스도인들의 세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마치 새롭고 성숙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만큼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공동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성경의 권위에 합당하게 세워진 공동체라야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이자 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럼에도 가나안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루터의 교회관속에서도 잘 녹아 있다. 그렇기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서 새로운 교회의 싹들이 새롭게 피어나기를 루터는 기대했으리라 본다.

 

나가며 !!

역사속의 산물이자 성경의 사람이었던 루터의 삶과 종교개혁을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민낯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촛불혁명을 통해 시민들이 정의로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고, 저항했고, 직접 시민들이 소통해서 결국 새로운 국가를 이뤘듯이 한국 교회는 지금 촛불대신 성서를 들고, 질문하고, 잘못된 권위에 저항해서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세워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루터의 후배들인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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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맛대로 살아라 - 틀에 박힌 레시피를 던져버린 재야 셰프, 전호용의 맛있는 인생잡설
전호용 지음 / 북인더갭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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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곰탕으로 이어진 할아버지의 추억

 

엄마 지저분하게 그걸 왜 먹어요?” 수박을 다 먹고나서 껍질을 벗기고 그 속 하얀 속살같은 속을 긇어내시는 것이다. “조용히 하렴. 이게 얼마나 맛있는건 줄 아니주방에서 뚝딱뚝딱 하시더니 수박속살 무쳐 나오는 수박무채는 그 어떤 반찬보다도 맛있었다.

지금도 수박을 다 먹고 껍질을 버리려 하면 어머니의 그 요리가 배시시 나의 입가를 웃음짓게 한다. 재야 셰프 전호용의 네 맛대로 살아라를 읽으면서 음식속에 녹아들어 있는 어머니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이웃들의 친근함과 넉넉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마치 6시 내고향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섬마을에서 삼형제를 혼자 키워야 했던 홀어미는 그날 운 때가 맞아 큼지막한 농어와 우럭을 잡아 잰걸음으로 집에 오다, 옆 짚 아이가 아직 밥을 먹지 못했다는 말이 걸려서 그냥 오지 못하시고 우럭을 한 마리 주고, 집에 와서 굶주린 세 형제에게는 농어를 끓어주셨다며 그 어미는 그 날 후에 두고 두고 옆집 아이에게 농어가 아닌 우럭을 준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여기셨다”(p91). 며 진정한 나눔은 이런 것이 아닌가 라는 친구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언급하며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라며 참된 부끄러움이 사라진 이 세태를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일상의 한 끼의 밥이 주는 자유함과 참된 기쁨을 소개한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음식에 관한 이야기 한 보따리를 조금씩 조금씩 푸는 할머니의 구성진 목소리처럼 찰 진 구성이 나의 귀와 어린 시절을 상상하게 만든다.

너희들 개구리 한 마리에 10원줄테니 잡아오렴. 할어버지가 아이들한테 약속한 돈은 당시 시골에서 용돈이라는 것을 받을 수 없는 우리들에게 강한 동기유발이 되었다. 그래서 인가 저녁이면 각 자 비닐 푸대에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소리를 내며 용돈받을 생각에 줄을 섰던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께서 와병 중이라 보신하려고 한 것이다. 아이들은 마리당 계산해 주는 용돈에 기뻤고, 솥단지에 폭 과서 나오는 국물을 드시는 할어버지는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셨다.” 그런 재밌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책 한 꼭지인 [개구리 곰탕]편의

이야기는 넘 재밌다. 늦둥이를 낳지만 제대로 젖을 먹지 못해 약한 막내에게 개구리 기백마리를 잡아 솥아 폭 고아 먹이자 점차 기력이 회복되어 얼굴에 핏기가 돌고, 눈빛이 맑아졌다는 것에 이르자, 그 때의 장면이 마구 상상이 되고 행복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아련히 떠올랐다.

단순히 음식에 관한 글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저자의 삶과 인생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기에 보는 내내 음식이 아닌 사람의 멋을 느낀다. 그러면서 곳곳에 소개하고 있는 지역의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고 있기에 어쩌면 단순한 음식이야기보다 담백한 저자의 인생과 음식의 철학이 잘 드러나고 있다.

아내가 아침상을 차렸다. 깻잎이 잔뜩 들어간 볶음밥이다. 밖에 비는 주적주적 내리고 음악은 흐르고 아침 아내와 밥을 먹는데 왜 옛날 어머니가 생각이 나지? 잠을 자고 있으면 어디선가 맛있는 밥 냄새와 음식향이 자던 나를 깨우던 그리고 밥 먹으라고 소리치시는 어머니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나와 어머니를 이어주는 것이 밥상인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지난날 추억의 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되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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