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 생각, 즉 사고 능력은 평소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대부분의 생각이 자동적으로 별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져서 그런 것인데, 이는 시스템 1의 특징이다. 또 우리는 ‘생각하는 나’에 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내 ‘생각’을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혼자만의 생각에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스스로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낯선 나’가 존재한다. 행동경제학 연구가 반향을 일으키고 이목을 끌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행동경제학의 탄생을 기록한 이 책은 우리에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주어졌다고 여기는 사고 능력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급기야 그 생각이라는 행위의 과정과 그로 인한 결과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전적으로 믿을 만한 것은 못 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화들짝 놀랄 만한 반전을 접하게 된다…….

-알라딘 eBook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창신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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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모습에 만족할 것이다.시17:15 …… 지식으로 더 알아야 할 것도 없고, 의지로 더 힘쓸 일도 없으며, 기쁨과 즐거움과 사랑의 감정도 본연의 제자리에서 온전한 안식과 평온을 누린다. …… 당신을 즐겁게 하는 현세의 모든 것은 결코 만족을 줄 수 없다. 당신이 유독 하나님 자신만을 온통 사모하기 때문이다. …… 이 땅에서 누리던 위안은 영혼의 갈망을 채워 주기는커녕 오히려 감질나게 부채질할 뿐이다. 그러나어린양은 ……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계7:17[7]

-알라딘 eBook <죽음에 관하여>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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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6편

주님, 은혜에 온전히 사로잡혀 항상 옳은 일만 하게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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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음이 곧 끝이 아닐까 봐 그게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라고 했다.[24]
다른 모든 감정의 배후와 이면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바울은 죽음을 장황하게 논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망이 쏘는 것은 죄"라고 단언했다.56절 그가 로마서 1장 20-22절에 가르쳤듯이, 아무리 깊이 감추고 있어도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 아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 예배와 순종을 마땅히 받으실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권을 장악하려고 그 지식을 막는다.18절
죽음 앞에 서면 자아에 대한 불만이 훨씬 또렷해진다. 이전처럼 양심을 침묵시킬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극중 인물인 햄릿은 자살을 생각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결심한다. 사후의 무엇에 대한 두려움 곧 "어느 길손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미답의 나라"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심판이 두려워지고, 그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세상으로 달아나느니 차라리 지금 이 세상의 고통을 묵묵히 견딘다." 이유는 "양심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기" 때문이다.[25]
아무리 막아 보려 해도 죄책감은 집요하며, 특히 죽음 앞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현대 문화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별로 없지만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원을 준다.

-알라딘 eBook <죽음에 관하여>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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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하여

T. S. 엘리엇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음이 곧 끝이 아닐까 봐 그게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라고 했다.[24]
다른 모든 감정의 배후와 이면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바울은 죽음을 장황하게 논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망이 쏘는 것은 죄"라고 단언했다.56절 그가 로마서 1장 20-22절에 가르쳤듯이, 아무리 깊이 감추고 있어도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 아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 예배와 순종을 마땅히 받으실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권을 장악하려고 그 지식을 막는다.18절
죽음 앞에 서면 자아에 대한 불만이 훨씬 또렷해진다. 이전처럼 양심을 침묵시킬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극중 인물인 햄릿은 자살을 생각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결심한다. 사후의 무엇에 대한 두려움 곧 "어느 길손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미답의 나라"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심판이 두려워지고, 그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세상으로 달아나느니 차라리 지금 이 세상의 고통을 묵묵히 견딘다." 이유는 "양심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기" 때문이다.[25]
아무리 막아 보려 해도 죄책감은 집요하며, 특히 죽음 앞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현대 문화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별로 없지만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원을 준다.

-알라딘 eBook <죽음에 관하여>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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