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공공 정책에서 우선순위가 오락가락하고 잘못 설정되는 중요한 이유는 위험에 편향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법과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로, 그리고 그들도 다른 시민들과 똑같이 인지적 편향에 사로잡히기 쉬운 탓에, 시민의 비합리적 우려에 과도하게 반응할 수 있다.
선스타인과 그의 동료 법학자 티무르 쿠란Timur Kuran은 편향이 정책에 흘러드는 작동 원리에 ‘회상 용이성 폭포availability cascad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사회적 맥락에서 "모든 어림짐작은 다 동등하지만, 회상 용이성 어림짐작은 다른 어림짐작보다 더 동등하다"고 평한다. 어림짐작의 확장된 개념을 고려한 말인데, 이때 회상 용이성은 판단에서 빈도와는 또 다른 어림짐작을 제공한다. 특히 어떤 생각의 중요도는 그 생각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도로(그리고 감정적 흥분으로) 판단할 때가 많다.
회상 용이성 폭포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것인데, 비교적 사소한 언론 보도가 발단이 되어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지고 정부가 대규모 조치를 취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6 더러는 언론이 보도한 위험성 경고 기사가 일부 대중의 주목을 끌면서 흥분과 우려 대상이 된다. 이런 감정 반응은 그 자체로 기삿거리가 되어 또다시 언론에 보도되고, 이번에는 더 큰 우려와 관심을 촉발한다. 이런 순환은 우려스러운 뉴스를 계속 흘려보내려는 개인이나 조직, 즉 ‘회상 용이성 장사꾼’에 의해 의도적으로 가속도가 붙기도 한다. 언론이 경쟁적으로 이목을 끄는 머리기사를 뽑으면서 애초의 위험은 점점 부풀려진다. 과학자들과 일단의 사람들은 커져가는 두려움과 혐오를 누그러뜨리려고 애쓰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어쩌다 주목을 받아도 대부분 적대적인 반응이다. 위험이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악의적 은폐’ 혐의를 받는다. 이제 해당 문제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되어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정치인들은 국민 정서의 정도에 따라 반응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 회상 용이성 폭포가 우선순위를 재조정한다. 그러면서 다른 위험관리도, 그리고 자원이 공익을 위해 쓰일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모두 물 건너간다.
쿠란과 선스타인은 여전히 논쟁 대상인 두 가지 사례에 초점을 맞추었다. ‘러브커낼Love Canal’ 사건과 소위 ‘알라 공포Alar scare’ 사건이다. 러브커낼에 매립된 독성 폐기물이 1979년 장마철에 유출되는 바람에 악취는 물론 표준치를 훨씬 넘는 수질 오염이 발생했다. 주민은 분노했고, 그중에서도 로이스 깁스라는 사람이 적극 나서서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도했다. 회상 용이성 폭포는 전형적인 대본대로 전개되었다. 폭포 꼭대기에서는 러브커낼 이야기가 날마다 쏟아져 내렸다. 위험이 과장되었다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무시되거나 다른 주장에 묻혔고, ABC뉴스는 <죽음의 땅The Killing Ground>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으며, 아기 크기의 빈 관 여러 개가 입법부 앞을 행진했다. 해당 지역 주민 다수가 정부 지원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독성 폐기물 규제는 1980년대 환경문제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유해 지역 정화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해 거대 자금을 조성한 종합환경대책보상책임법CERCLA 제정은 환경 입법에서 의미 있는 성취로 간주된다. 여기에 비용이 워낙 많이 들다 보니 일부에서는 우선순위를 달리했더라면 그 돈으로 훨씬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러브커낼의 진실을 둘러싼 의견은 여전히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으며, 신체적 피해 주장은 입증된 바가 없어 보인다. 쿠란과 선스타인은 러브커낼 이야기를 날조된 사건 정도로 기록했고, 반대편의 환경운동가들은 아직도 ‘러브커낼 재앙’을 이야기한다.
쿠란과 선스타인이 회상 용이성 폭포 설명에 이용한 두 번째 사례인 1989년의 알라 사건에도 의견은 엇갈린다. 환경 우려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는 ‘알라 공포’로 알려진 사건이다. 알라는 사과에 뿌려 생장을 조절하고 시각 효과를 높이는 화학물질이다. 이 공포는 알라를 상당량 섭취한 쥐에서 암으로 발전하는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언론 보도에서 시작되었다. 이 보도는 당연히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사람들의 두려움은 다시 언론을 자극해 기사가 되었다. 회상 용이성 폭포의 기본적 작동 원리다. 이 주제는 뉴스를 도배했고,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의회에 나와 진술을 하는 등 극적인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사과와 사과 제품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 사과 업계는 큰 손실을 입었다. 쿠란과 선스타인은 한 시민이 전화로 "사과 주스를 하수구에 버려야 안전한지, 유독성 폐기물로 처리해야 안전한지"를 물었던 사례를 인용했다. 제조업체는 관련 제품을 회수했고,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관련 제품을 판매 금지했다. 이후 연구에서 알라가 암을 유발할 위험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작은 문제에 과도하게 반응한 사건임은 분명했다. 결국 좋은 사과 소비가 줄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국민 건강에 미친 순 효과는 부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알라 사례는 작은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 능력에 기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위험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과잉 대응할 뿐 중간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7 파티에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10대 딸아이를 기다리며 밤을 새워본 부모라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걱정할 필요가(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에 안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슬로빅이 주장했듯이, 걱정의 양은 위험 확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 우리는 분모에 해당하는 전체 사건은 생각하지 않은 채, 분자에 해당하는 뉴스에 나온 비극적 사건만 상상한다. 선스타인은 ‘확률 무시’라는 말을 만들어 이런 유형을 설명했다. 회상 용이성 폭포의 사회적 작동 원리에다 확률 무시가 더해지면 필연적으로 사소한 위협이 크게 부풀려지고, 더러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오늘날 회상 용이성 폭포 유도 기술을 가장 잘 구현하는 자는 테러범들이다. 9/11 같은 소수의 끔찍한 사건을 제외하면, 테러 희생자 수는 다른 사망 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편이다. 이를테면 이스라엘처럼 빈번히 테러의 표적이 되는 나라에서도 매주 테러 희생자 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두 위험의 회상 용이성이 다르고, 위험이 머릿속에 쉽게, 빈번히 떠오르는 정도도 다르다. 언론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끔찍한 장면들은 사람을 초조하게 한다. 내 경험상 그럴 때는 침착하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테러는 곧장 시스템 1에 대고 말을 하는 셈이다.
이처럼 내 동료들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에서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릴까? 회상 용이성 폭포는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은 분명 공공 자원 분배에서 우선순위를 왜곡한다. 캐스 선스타인은 의사 결정자들 주변에서 대중의 압력을 차단해, 모든 잠재적 위험과 그 위험을 줄일 자원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공정한 전문가가 자원 분배 결정권을 갖는 체계를 찾고자 했다. 그런가 하면 선스타인에 비해 전문가를 훨씬 덜 신뢰하고 일반인을 좀 더 신뢰하는 폴 슬로빅은 대중의 감정이 차단된 전문가는 결국 대중이 거부할 정책을 내놓을 테고, 이는 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둘 다 대단히 일리 있는 주장이고, 나는 두 주장에 모두 동의한다.
나는 비합리적 두려움과 회상 용이성 폭포가 위험관리 공공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불편해하는 선스타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은 널리 퍼진 두려움을 비록 그것이 불합리하더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슬로빅의 생각에도 동의한다. 두려움은 합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고통스럽고 사람을 쇠약하게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진짜 위험뿐 아니라 그런 두려움에서도 대중을 보호해야 한다.
슬로빅은 책임을 지지 않는 선출되지 않은 전문가가 결정을 내린다는 것에 대중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옳은 이야기다. 나아가 회상 용이성 폭포는 여러 위험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위험 감소 예산을 전반적으로 늘려,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도 있다. 러브커낼 사건으로 독성 폐기물 관리에 자원을 과도하게 할당했을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 전반에 우선순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민주주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민의 믿음과 태도를 좌우하는 회상 용이성 어림짐작과 감정 어림짐작은 비록 전반적으로는 옳다 해도 편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지식에다 일반인의 감정과 직관을 결합해 위험관리 정책을 설계할 수 있도록 심리학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알라딘 eBook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창신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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