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경제학 - 경제 위기의 시발점, 부동산 버블의 구조를 이해하는 법
로버트 J. 실러 지음, 정준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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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버블을 경고하다

작금의 부동산 시장이 왜 버블인지, 버블인 게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쉴러 교수는 이 책에서 부동산 버블을 경고한다. 사회적 불신과 불완전한 금융 시스템이 부동산 버블을 일으켰고, 그 버블을 가만히 두어 선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부동산 버블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버블은 꺼지기 마련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하지만, 시중 전문가와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관리하려고 하지, 부동산 가격 그 자체를 관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올라버린 부동산 가격에 대해선 무관심이다. 그들에게 부동산은 꺼지지 않는, 그리고 꺼지지 않아야 하는 신성한 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부동산 가격이 왜 떨어지면 안 되는가?"라고 반문한다. 부동산도 주식처럼 시장의 가격 조정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사전에 경고하기도 했던 저자이기에, 저자의 경고가 가볍게 여겨지지 않았다. 저자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지적했지만, 독서하는 내내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과 다르지 않게, 우리나라 부동산도 상당한 버블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출받아 부동산을 매매하는 게 당연하게 된 세태야말로 부동산이 버블이라는 확증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세제도에서 기인한 갭투자는 부동산 시장의 붕괴를 더욱 가속할 수 있다. 실제로 갭투자는 전세사기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문제 수준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부동산 버블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저출산과 가계부채는 별도로 생각하더라도...)

버블의 원인과 해법

누가 버블을 일으키는가? 그건 바로 우리 모두

버블은 역동적이면서 임의적이라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감독 기구도 사람이기에 버블의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버블의 상황에 놓여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그 누구도 버블이 붕괴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인지되고 관리할 수 있는 버블은 더 이상 버블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저자는 버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많은 요인이 실상 버블의 결과라는 것을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버블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연준의 확장 통화정책은 당시 버블 경제가 조성한 경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정책이었다.

(23년 최근 한은의 금리 동결 정책이 떠오른다)

저자는 버블의 원인을 대중에게서 찾는다. 특정 분야(부동산, 코인 등)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버블이 발생한다. 대중에게 '이익을 올릴 명백한 기회'가 버블의 중요한 원인이다. 네트워크 효과, 밴드왜건 효과로 버블은 사회적 전염력을 타고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투자하면 거액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중이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2022년까지만 해도 대중(심지어 전문가 사이에서도)에게 불패 신화로 불리던 부동산 시장을 생각해 보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버블의 원인은 분명하게 대중에게 있다.

저자는 버블은 인강의 본성과 심리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며, 버블 경제의 해법으로 금융 민주화를 제시한다. 상당히 추상적이기도 한 금융 민주화는 금융 소비자에게 보다 더 정보가 개방되고 대중 친화적인 금융 제도를 의미한다. 깨알 같은 작은 글자가 빽빽한데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 상품 설명서를 본 적이 있다면, 금융 민주화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느낄 수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금융 상품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금융 민주화다. 가진 자 그리고 알고 있는 자만이 유리한 현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 금융에 친숙하지 않은 대중을 향해 있다.

저자는 금융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인프라 구축이라고 이야기한다. 기관이 아닌 개미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감독 기구, 특정 조건이 적용되면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동 처리되는 소비자보호 디폴트 옵션, 보다 더 친숙한 금융 정보 공시, 통합 관리되는 금융 데이터베이스, 물가 연동 기축통화(인플레이션 연동 측정 단위) 등 저자가 제시하는 제도는 모두 인프라를 향해 있다.

저자는 여기에 더 나아가서 금융 소비자를 위한 파생상품을 제시한다. 파생상품이라 한다면 매우 위험한 상품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파생상품은 금융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금융 시스템을 신뢰하며 이용할 수 있도록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부동산 선물 시장뿐만 아니라, 워크아웃형 모기지, 홈 에쿼티 보험, 생계 보험 등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파생상품은 금융사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상품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금융 위기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상품이다. 제도뿐만 아니라 금융 소비자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상품도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여러분은 믿을 수 있으신가요?

힘들게 모은 돈을 아무렇지 않게 맡길 수 있으신가요?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신뢰였다. 사회적 신뢰, 더 좁게는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다. 금융이 가진 순기능은 명확한데, 그간 금융의 안 좋은 면이 사회에 많이 부각되어 대중에게 외면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 위기 때마다 금융기관과 정부는 책임이라는 명목하에 피해를 고스란히 금융소비자에게 전가했다. 소위 '자기 책임 원칙'이다. 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도 현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10년도 더 지난 23년에 홍콩 ELS 불완전 판매 사건 등 끊임없이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저하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책임이라는 명목하에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행태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금융 시스템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발전하기도 한다. 현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제도들이 과거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강한 저항에 부딪혔지만 결국에는 변화했다. 노예 제도가 어떻게 폐지되었는지 생각해 보자. 금융 시스템도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라며, 저자는 '규제보다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봤다. 보다 많은 사람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금융 민주주의였다.

추상적으로만 들리는 금융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의심하지 않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달성되었다 할 수 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세세히 적힌 상품 설명서가 필요 없는, 지점의 프런트 직원이 권유하는 금융 상품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남녀노소 모두가 간편하게 금융 상품을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금융 제도는 금융 민주주의와 거리가 한참 멀다는 걸 느끼면서도,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이 보이기도 했다. 보다 투명한 금융 제도, 금융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도 안착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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