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로펌은 무엇이 다른가 - 대한민국 대표 변호사의 승소 전략
이미호 외 지음 / 박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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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의 승리 전략

로펌에게 배우는 교훈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로펌이 승소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 소개하는 르포 모음집이다. 화려한 사진과 변호사 프로필은 로펌을 홍보하기 위해 쓰인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마치, 신문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광고 기사를 보는 느낌이다. 책의 레이아웃과 디자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각 부분마다 저자가 달라 퀄리티가 다르다는 점도 특징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핵심 논리만 간결하게 전달한 부분이 있는 반면,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이야기로 끝맺는 부분이 있다. 일관적이지 않은 점이 아쉽다.

패소했거나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소송을 승소로 이끈 역전극이 책의 대부분을 장식한다. 승소하기 위한 로펌의 전략이 백미다. 로펌의 전략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는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

로펌은 먼저 상황에 집중했다. 상대의 의중뿐만 아니라, 재판부의 입장 등 소송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보려 했다. 자신의 위치를 알면 부족한 게 보이기 마련이다. 로펌은 발품을 팔아 승소에 유리한 판례와 자료를 모았다. 외국의 판례, 연구 논문, 비공개 자료 등 가리지 않았고 모았다.

책에 담긴 송사 모두 '논리' 싸움이었다. 성문법에 따른 '법'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송사 당사자의 주장 중 어느 주장이 더 일관되고 합당한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됐다. 특히, 전례가 없는 새로운 사건의 경우에 더욱 강력했다. 어떻게 판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재판부에게 로펌은 유사한 논리를 적용한 판례를 제시하며 설득했다.

로펌은 상대방 논리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상대방의 불리한 부분을 집요하게 짚고 그들의 논리를 파훼했다. 대형 로펌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도 강력하지만,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작은 로펌이라도 결과를 뒤집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역전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모두 상대와 자신을 명확히 파악했기에 가능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격언은 동일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서희의 외교담판

서희가 전쟁을 끝맺을 수 있었던 이유

우리나라 역사에서 외교하면 가장 떠오르는 인물은 외교담판으로 알려진 '서희'다. 서희는 전쟁이 아닌 협상으로 거란의 대군을 물리쳤다. 서희는 어떻게 거란과 협상했길래 지고 있던 전쟁에서 영토까지 얻을 수 있었을까?

서희의 전략은 로펌의 전략과 다르지 않았다. 서희는 우선 전쟁이 발발한 이유,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철저히 분석한다. 만리장성 넘어 북방 시베리아는 기후와 땅이 척박해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서 유목이 발달한다. 유목은 농업에 비해 인구 부양력이 모자라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거란족, 몽골족, 만주족 등 북방에서 발흥한 유목국가의 중원 침략은 국운과 직결된 문제였다. 중원 공략이 성공하면 대제국이 됐고, 실패하면 분열되어 변방의 작은 부족 국가로 쇠퇴했다. 국운이 달린 문제이기에, 거란족 유목국가 요(遼)가 풍요로운 중원국가 송(宋)을 침략하는 건 예정된 일이었다.

요(遼)의 입장에서 송(宋)과 상당히 관계가 좋았던 고려는 후방을 위협하는 나라였다. 고려를 무시하고 송(宋)을 공략했을 때, 고려가 후방에서 요(遼)를 공격한다면, 요(遼)의 전선은 두 개가 되어 중원 공략에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요(遼)는 중원 공략에 앞서 고려를 공략하여 후방의 안전을 도모한다. 고려와 전쟁이 길어질수록 중원 공략도 힘들어지기에, 요(遼)는 보급을 포기하고 기마군단으로 빠르게 진격하는 전격전 방식을 선택한다.

겨울에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빠르게 개성을 향해 남하하는 요(遼)의 대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고려는 혼란에 빠진다. 성종과 고려 조정은 대항할 생각조차 못했다. 항복할 때 영토를 어디까지 할양할 것인지가 고려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때 맞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며 고려 조정을 진정시키는 인물이 있었으니, 서희다.

서희는 고려가 농성에 들어가 장기전이 되면 보급이 취약한 전격전 방식을 선택한 요(遼)에 상당히 불리하다는 점, 중원 공략을 원하는 요(遼) 후방의 안전을 확보해 준다면 전쟁의 이유가 없어진다는 점을 들어 항복을 생각하는 조정을 설득해 장기전에 대비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거란과 협상에 들어간다.

대중에게 곧잘 요(遼) 장군 소손녕이 멍청한 인물로 소개되지만, 절대 아니다. 요(遼)에게 중요한 건 중원 공략이다. 고려가 후방의 안전만 보장해 준다면, 굳이 중원 공략 이전부터 고려와 전쟁하며 기운을 뺄 필요가 없었다. 고려와 전쟁하면서 중원 공략을 위한 병력을 보전하는 것도 요(遼)의 중요한 과제였다. 서희는 이 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서희는 송(宋)과 바다로 교류할 수 있지만 요(遼)는 여진이 가로막고 있어 교류하지 못함을 강조한다. 요(遼)와 직접 교류할 수 있다면 거리가 먼 송(宋)보다 요(遼)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며, 작금 신의주 지역인 강동 6주를 여진으로부터 빼앗는 걸 묵인해달라 요청한다. 요(遼)는 국경을 맞댄다면 고려를 더 통제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고, 고려가 강동 6주를 차지한 뒤 요(遼)에 사대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철군한다.

고려는 이후에도 송(宋)과 친밀하게 지내며 요(遼)의 속을 썩여 전쟁이 4차까지 이어졌고, 이때 고려가 획득한 강동 6주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작용했다는 건 뒷이야기다.

자신과 상대를 이해해야 하는 건 비단 소송과 외교에서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협상과 논쟁으로 점쳐져 있다. 그렇기에, 로펌과 서희처럼 매사 지피지기(知彼知己)가 필요하다. 겸손하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자신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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