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정치 문화'가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다. 상부 구조인 경제에 의해 하부 구조인 사회와 문화가 결정된다던 마르크스 이론과 사뭇 다르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상호 관용의 규범은 사라진지 오래됐다.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하면서 정의롭지 못한 상대에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 '르쌍티망'이 팽배하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일단 승리하면 용서받는 사회다. 연고주의로 똘똘 뭉친 이들이 진영논리를 펼치며 다른 이를 배척·오도하고, 이에 피해 입은 또 다른 이들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합리성과 협력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저자는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정치·사회 풍토에 의해 사회적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불공정이 확대되고 있다는 게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경쟁 사회다. 능력주의에 입각한 경쟁 사회는 얼핏 보면 '공정'해 보인다. 각자 노력한 정도에 따라 우위와 보상이 결정되는걸,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걸 불공정하다고 이야기할 순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 이슈가 되는 것은 능력주의와 경쟁에 따른 사회 분배가 공정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따금씩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원하는 목표를 쟁취한 사례가 사회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그런 사례가 흔치 않기에' 주목받는 거다. 모든 사람의 출발선이 같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역설이다. 우리 사회는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각자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공정한 사회가 절대 아니다.
세상에는 '능력'이라고 할만한 게 수없이 많다. 누구는 손재주가 좋으며, 누구는 달리기를 잘하고, 누구는 요리를 잘한다. 각자의 재능이 다른데, 이를 같은 방식으로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학능력평가만으로 아이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한다. 우리 사회에서 '능력'을 평가하는 주요 요소는 '진짜 평가가 필요한 능력'이 아닌 '학벌'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을 보유한 학생이 수능 성적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IT 시설을 갖춘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현실은 우리나라 능력주의가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2021년 말 모 경제신문에 유명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학벌이 업무 수행 능력을 증명하는 건 팩트라며 블라인드 채용을 폐지해야 한다는 논지의 글을 투고했을 정도다. 정작 사회에선 "공부 머리와 일 머리는 따로 있다."라는 격언이 나도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저자는 경쟁이 공공선과 공익을 증대하는 범위 안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일 때 생산적이지, 죽기 살기의 생존 경쟁이 된다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진짜 우열을 가리는데 필요한 능력과 전혀 관련 없는 경쟁이 된다. 그런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은 많은 희생을 치러 얻어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칠 수밖에 없다. 위에서 당기고 밑에서 미는, 끼리끼리 모인다는 연고주의가 형성되는 거다.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이 사회적 분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흔히,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한다. 외부의 위협에 대처할 때는 연대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권력이 된다면 사회적 신뢰를 파괴한다.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경쟁을 장려하며 관용과 여유를 상실한 결과가 지금의 불공정한 사회다.
결국,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관용과 여유가 아닐까. 우리는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빼앗긴 관용과 여유를 어떻게 되찾을지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정의로우려면, 사회 구성원이 자신이 속한 사회가 공정하다고 느껴야 한다는 전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출판사에게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