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johnpotter04/221872725629

 | 미국 경제발전사 |  |
|
미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준다. 특정 경제 이론 또는 이념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보다, 미국의 발전 동인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건국부터 현대까지 미국 경제가 어떠한 변화를 거쳤는지 알 수 있다. 물 흐르듯, 과열과 진정 단계를 반복하며 발전하는 미국 자본주의를 볼 수 있다.
저자는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변방의 식민지에 불과했던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성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과감하게 이탈하는 미국인의 도전정신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는 거다. 치열한 경쟁을 유인하고 실패한 기업을 빠르게 정리하는 자본주의가 혁신의 동력원이다. 경제 위기에도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던 역동적인 자본주의가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2020년 현대 미국은 창조적 파괴 정신을 잃고 정체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복지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등 혁신이 아닌 안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저자는 다시금 혁신에 뛰어드는 미국 사회를 꿈꾼다.
학자 출신이고 오랜 기간 미 연방준비은행(FRB; Federal Reserve Bank)의 의장으로 역임해, 통계자료나 인용문의 명확한 출처가 신뢰를 준다. 무엇보다, 문장이 깔끔하다.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문장을 길게 만들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했다. 독자의 눈과 머리가 편하다. 하지만, 경제학을 모르는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내용이 많다. 일반인에게 미국 경제 발전 과정을 소개하는 교양서가 아니라, 미국 지식층에게 지금 잊고 있는 게 무엇인지 경고하는 책이다. 경제와 경영, 통계 이론에 아는 게 없다면 이 책은 매우 읽기 힘든 책이 될 거다.
 |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  |
|
혁신이 없는 정체된 국가는 도태된다. 청동기 시대, 주변국이 철기를 도입할 때 청동기를 고집하는 거다. 혁신을 못 하면 따라가기라도 해야 하는데, 거부하거나 뒤늦은 국가의 결말은 항상 처참했다. 구한말 조선이 그랬고, 동구권과 소련이 그랬다. 북한은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적 경험에 의해 많은 사람이 혁신이 필요하다는 건 인지한다. 하지만, 혁신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혁신은 공짜가 아니다.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 고통을 감내하는 거다.
'혁신'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는 거다. 혁신이 '창조적 파괴'라고 달리 불리는 이유는 '파괴'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혁신이 파괴하는 대상에는 문화만이 아니라, 일자리 같은 생활도 포함된다. 혁신에 의해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많은 마부가 일자리를 잃었다. 혁신에 의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했을 때, 많은 아날로그 회사가 파산했고 직원은 갈 곳을 잃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혁신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막상 혁신이 다가오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많은 혁신가가 사회의 멸시와 적대를 견뎌야 했다. 많은 혁신이 사회의 반발에 좌절했다.
좌절된 혁신의 대가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된다. 국가는 혁신이 창출하는 경제 효과를 얻지 못한다. 국민은 외부 경제(더 편리한 생활, 새로운 일자리 등)를 상실한다. 더 위험한 건, 좌절된 혁신은 언젠가 더 큰 청구서를 들고 다시 찾아온다는 거다. 혁신으로 강력한 신무기를 무장한 주변국의 군대가 침략한다. 혁신으로 대항하기 힘든 거대 자본이 되어 국내에 들어온다.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약탈이 뒤따랐다. 혁신을 거부한 대가는 혁신의 비용을 아득히 넘어선다. 더 힘든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주게 된다.
우리나라는 혁신에 대한 저항이 어마어마하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집단과 선거를 앞두고 눈치를 본 국회와 정부에 의해 혁신은 좌절된다. 정치의 존재하는 이유는 이런 사회 갈등을 적절히 조율하는 데 있다. 혁신을 장려하고 혁신가를 보호하면서, 혁신에 의한 피해를 완화하는 게 정치가의 중요한 책무다. 하지만, 혁신을 말만 외치고 외면한 채 집권을 위해 근시안적으로 기득권의 손을 들어주는 정치계가 마냥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