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 극우의 탄생 : 메이지 유신 이야기 - 요시다 쇼인부터 아베 신조까지
서현섭 지음 / 라의눈 / 2019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일본 극우 세력 소개 |  |
|
저자는 일본 총영사를 역임했던 사람으로 일본 극우 사상의 배경, 기원, 중요 인물 등을 소개한다. 책 대부분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그 인물이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다각도로 한 인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극우 세력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최근 아베 정부의 동정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고 싶다면 읽어보자.
 | 부국강병(富國强兵), 비틀어진 꿈 |  |
|
일본 극우는 패전 국가에서 대제국 일본으로 복귀를 꿈꾼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자국이 강성해지길 바라지만, 일본 극우 애국심에는 제국주의, 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구한말 조선과 청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서양의 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한다. 먼 옛날 사대하던 중국과 한국을 뛰어넘었다는 자신감, 가장 먼저 산업화를 이룩했다는 우월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 자신을 맹추격한 한국에 대한 패배감과 경계심이 존재한다.
 |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 |  |
|
왜놈이라 비하 받으며 야만인 취급받던 일본이 당대 최고 문명국이던 중국과 그 뒤를 잇던 한국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도리'다. 일본은 명분에 목숨 걸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건 자본과 무력이다. 이 둘을 위해서라면 난생처음 본 푸른 눈의 금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일부 국사학자는 일본과 한국의 개화 시기는 불과 50년 차이며, 반세기 차이 때문에 운명이 갈렸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본은 1600년대부터 서서히 개화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중화사상에 심취해 서양의 발전된 기술에 무관심했던 중국, 유교와 사대주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서양의 기술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국산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백 년 이상을 노력했다. 조선이 송시열을 위시한 성리학에서 빠져있을 때, 일본은 조선에 통신사를 요청하면서 동시에 난학(蘭學; 네덜란드 학문)을 배우기 위해 서양인을 받아들였다.
중요한 건 '융통성'이다. 종교에 심취했던 유럽은 암흑기를 겪어야 했고, 소실 위기에 처한 그리스 학문을 보존했던 아랍은 현대 지옥 세계다. 유교에 미쳤던 조선은 식민 통치라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이미 지나온 역사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미래는 충분히 바꿀 기회가 있다. 다시는 일본과 중국에 꺾이지 않게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열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