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 당신이 지금 궁금한 '요즘 평양'
정재연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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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평양 여행기


 북한을 좋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친북 성향의 평양 여행기는 어떻게든 북한 체제를 좋은 방향으로 포장하려 하는데1, 이 책은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저자는 여행 당시 느낌을 필터링하지 않는데, 책을 읽다가 웃게 만드는 재치와 무슨 느낌인지 한 번에 알 수 있는 촌철살인이 많다. 북한의 과자를 먹으면 건강해지는 느낌이라 하거나, 소주 맛이 병원 소독약 맛이라고 하는 등의 표현력이 뛰어나다. 저자의 생생하고 솔직한 표현이 독자가 간접적으로 평양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2


사람 사는 곳, 평양


 저자는 북한의 감시 체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관광객을 감시하는 가이드, 자유롭게 거리를 노닐 수 없고, 사진을 맘에 드는 대로 찍을 수 없으며, 찍은 사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는 검열, 제보를 통해 일반인을 감시자로 만드는 북한 사회를 느낄 수 있다. 독재자 김정은 아래 노동당 일당독재체제인 북한은 미셸 푸코의 패놉티콘(panopticon)을 그대로 재현했다.


 학생 때 다양한 경제 이론을 접해 시야를 넓히라는 교수님들의 뜻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등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을 호기심으로 공부했다. 자본주의 사회 속 비주류로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 덕에 '시장'이라는 가상의 신을 만들어 모든 문제를 보이지 않는 손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설파하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의 허상을 깨달았다. 노동가치설을 기반으로 자본가가 어떻게 노동자를 착취하는지 설명하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공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사회주의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그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느꼈다.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학문이 종교가 됐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이 책은 그 깨달음을 상기시킨다.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걸었으면서, 모든 사람이 평양에 살 수는 없다며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핑계로 평양 이외 지역민은 차별하는 북한 체제의 모순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군인 시절 DMZ 내 GP에서 동기들과 주적을 북한 주민을 포함한 북한 전체로 봐야 할지, 북한 주민은 별개로 하고 북한 정부를 주적으로 해야 할지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둘을 별개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대다수가 의견에 동의했다. 내 의견이 옳았다는 것을 이 책이 밝혀준다. 평양은 극악무도한 빨갱이의 세계가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이다. 웃을 줄 알고, 공감할 줄 아는 우리의 가족이 사는 곳이다. 독재자를 열렬히 찬양만 할 것 같던 평양 시민은 사랑하고, 행복을 찾는 그저 사람이었다. 잘못은 북한 독재 정부가 했지, 북한 주민은 그저 살기 위해 순응한 것뿐이었다. 여기서 통일3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오랜 기간 독재정과 사회주의에 적응한 북한 주민에게 갑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의 도입은 또 다른 혼란과 공포다.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월북하는 탈북자가 괜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천천히 하나 됨을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시류가 통일에 기울면, 평양 시민은 기꺼이 거리로 나올 것이다.


 우선, 북한 독재 정권이 잠가놓은 폐쇄사회부터 열어야 한다. 우선 교류하고 소통4해야 통일에 대한 답이 나오지 서로 적대만 해서는 답이 없다. 다만, 김정은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게 걱정이다.


 무엇이 됐든, 어떻게 됐든, 언젠가 저자의 바람처럼 자유롭게 평양을 오가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통일만 되면, 평양의 안학궁과 개성의 만월대를 반드시 견학5하리라!

  1. 한겨레 기자 진천규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읽어보면, 친북 성향의 여행 작가가 어떻게 북한 체제를 포장하려고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
  2. 영국 잡지에서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평한 적이 있었다. 직접 둘 다 먹어본 저자는 대동강 맥주의 맛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하는데, 정말로 우리나라 맥주보다 맛있는가 보다. 이 책을 읽고 궁금해서 대동강 맥주 구매처를 찾기도 했다.
  3. 대한민국 헌법과 국적법상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반드시 응징해야 할 적이지만, 북한 주민은 우리가 반드시 보듬어야 할 대한민국의 주권자다. 대한민국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자와 끄나풀들을 가만히 둔다면, 대한민국은 존속 이유가 없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통일은 포기해선 안 될 국가 목표다.
  4. 인터넷에 통일이라는 목표에 함몰돼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독재자 김정은을 으니라며 좋게 포장하는 파렴치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보인다. 심지어, 복지부 장관까지 한 유력 정치인까지 김정은이 북한 주민을 위해 경제 성장을 목표로 노력한다는 뇌피셜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그런 행동은 지금도 억압받는 북한주민, 북한으로 인한 피해자와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5. 북한의 경제 사정으로 고구려의 정궁인 안학궁과 고려의 정궁인 만월대는 황량한 터만 남아있다. 역사적 기록엔 중국 사신조차 부러워하던 화려한 궁궐이 못된 후손 만나 고생하고있다. 통일되면 반드시 복원을 위한 자금을 기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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