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마일즈 웅거 지음, 박수철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키아벨리 평전


 마키아벨리에 대해 시대적 배경, 주변 환경 등을 종합하여 조명한다. 그의 가치관과 사상은 무엇인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마키아벨리의 원전 [군주론]과 [로마사논고]을 읽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마키아벨리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저서를 읽지 않았다면, 저자의 해설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드시 두 저서를 먼저 읽어보고 이 책을 접하기를 추천한다.


현대 재평가되는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 권모술수를 부리는)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마키아벨리가 현대에 재조명받고 있다. 현대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다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마키아벨리는 지극한 현실주의자다. 마키아벨리는 생전에 본인이 처한 현실에 맞춘 판단에 따라 처신하니, 때로는 지조와 절개가 없어 보이고, 여우처럼 얄팍해 보인다. 그런 그가 어떤 면에서 새롭게 비치는 것일까.


 과거 그를 비판하는 첫 번째 논조는 마키아벨리의 도덕성이다. 공화제를 열렬히 옹호하면서, 정작 [군주론]이라는 저서에서는 공화제를 몰락시킨 메디치를 찬양하고 있으니, 당시 세간의 눈에 얼마나 비겁해 보였을까. 두 번째 논조는 당시의 주류 관념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대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던 시기다. 종교적 관념이 사람의 행동 양식을 결정했고, 정치 권력에도 반드시 준수해야 할 규범으로 간주하던 시절이다. 마키아벨리는 이에 과감히 도전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위시한 국가 관념은 군주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이자 규범이었다. 군주는 백성의 삶을 우선시해야 하고, 신하의 의견에 경청해야 하는 등 누구나 들으면 당연시할 도덕을 주된 논쟁거리로 삼았다. 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란 윤리 같은 철학적 차원이 아니라, 때로는 약속을 어기기도 하고 배신도 하는 '현실'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마키아벨리는 착하기만 한 군주는 국가에 재앙이라며, 때로는 독재자처럼 강력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 국가에 득이 된다고 하는 등 시대적 규범에 반기를 든다.


 마키아벨리 이전 정치사상가들은 현실에서의 정치가 아니라, '선(善)'을 비롯한 철학적·관념적 세계의 '이상적인 정치'만을 생각해왔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에 벗어나 지도자가 실제로 응용할 수 있는 정치 공학을 세상에 선보인다.


 마키아벨리가 재평가받는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현대에는 많은 역사가 축적됐다. 동서양의 많은 정치사상가가 끊임없이 설파해온 권력자의 선(善)은 추상적인 관념일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인은 역사라는 경험을 통해 이제는 '완벽한 이상세계는 존재하지도,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성(聖)을 중시해 명분과 도덕에 얽매인 지도자나 제도는 국가를 쇠퇴시키거나 몰락으로 이끌었다. 반대로, 성(成)을 달성했지만, 부도덕한 경우가 많다. 역사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두 성(成, 聖)을 모두 가진 이상적인 국가나 지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상'이나 '도덕' 같은 관념이 아니라 당장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국가를 위해서는 때로 정당하지 못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해야 한다고, 오히려 그것이 더 '옳은 것'임을 설파하는 마키아벨리가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키아벨리는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을 추구하던 근현대의 시작이다.


조선의 성리학과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에서 공화제를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한반도에는 성리학이 꽃피고 있었다. 조선의 성리학은 마키아벨리 이전 유럽의 정치사상처럼 추상적 관념인 '이(理)'와 '도(道)'를 연구하는 학문이자 종교다. 여기서 조선이 왜 유럽에 뒤쳐진 지 알 수 있다. 조선은 경연(經筵)같이 왕이 정치를 배우는 공간조차 왕도(王道) 같은 관념적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서양은 마키아벨리처럼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를 바라본다. 단순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이 변화가 역사를 갈라놓는다. 서양에서는 추상적인 철학의 세계에서 벗어나 실험을 통해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이 등장하고, 왕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지위가 신의 영역에서 현실 세계로 내려온다. 이러한 변화로 서양은 세계를 제패한다. 국가의 문학·철학적 수준이 아무리 훌륭해도 눈앞의 총검에는 무력했다.


 수많은 성군과 뛰어난 지도자에게 도덕적 결함이 회자되듯이, 인간은 '이상'에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을 한 마디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야누스의 얼굴'이다. 인간은 이타적이면서도 '이기적'이다. 인간은 선하기도 하면서도 '악'하다. 두 얼굴을 인간이 동시에 지닐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인간 스스로가 만든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인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상적인 정치가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를 이야기한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본 마키아벨리는 우리에게 교훈을 전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자의 말에 현혹되지 마라


 훌륭한 책을 접할 기회를 준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에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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