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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박태원」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성탄제 ㅣ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15
박태원 지음, 김병구 엮음 / 사피엔스21 / 2012년 7월
평점 :
인간人間 - 늘 스치기만 했던 그 단어를 집요하게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사람 인, 사이 간. 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 어떤 사전에서도 인간 은 단수 명사이건만 뜯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해석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말로 사람은, 혼자 완성될 수 없으며 함께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필연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고, 그 속에서 다양한 무언가들을 얻고 잃고 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인간에 대하여, 또 더 넓은 의미로서의 인간人間에 대하여 깊이 읽어낼 수 있다.
이 소설은 전적으로 ‘구보’의 일상을 통해 전개된다. 그의 일상에는 많은 것들이 결핍되어 있다. 그가 갈 곳이, 글감이, 직업이, 가정이, 마음을 나눌 벗이, 추상적으로는 무언가 해내려는 의지와 행복이 그렇다. 고독은 저절로 수반된다. 고독을 사랑하는 것에도 실패한 그는 무기력하게 도시를 배회한다. 방황하는 의식은 어렴풋이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행복을 ‘그렇게도 구하여 마지 않’으면서도 막상 그것을 얻을 기회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오면 나서지 못 하다가 결국 기회를 놓친다. 잇따르는 것은 후회뿐이다. 더 큰 고독과, 더더 큰 방황뿐이다.
그렇게 ‘구보’가 행복과 기쁨, 안정을 찾아 떠도는 도시의 모습은 또 어떤가. 젊은이들은 열정과 패기 대신 피로를 곱씹으며 우울과 고달픔을 하소연한다. ‘불균등한 속에서 쉴’ 새는 없다. 쉴 새가 없으니 타인과의 교류는 배부른 소리다.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식과 애정보다 무지無知와 재물이 더 간절하고, 무지보다 가난이 더 큰 수치다. 그리하여 인연을 만나도 피하기 일쑤고 긍정보다 먼저 부정의 감정들이 내걸린다. 대부분 구석진 자리, 사람들과 맞닿지 않는 곳을 선호한다. 고독을 잊기 위해 찾는 곳 치고는 삭막하기 그지 없다. 그 중 한 군데인 경성 역에 앉아 ‘구보’는 깨닫는다. 누구에게서도 인간다운 온정을 찾을 수 없다고. 사람은 많은데 벗은 없다고. 오히려 고독이 이 속에 있다고.
인간人間의 완성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며, 다양한 것을 얻고 잃는 것이 진정 사람다운 삶이라 했다. ‘구보’는 제대로 된 소통과 이해 없이 채워지는 본인과 타인들의 세상이 질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고자 한다. 일단 서로가 제대로 관계 맺지 않는 것에서 결핍은 시작되고 고독으로든 우울로든 외로움으로든, 뒤따르는 질병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도 책 속 세상과 같냐고 묻는다면 나는 부정하겠지만, 완전히 다르냐고 물어오면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서로의 사이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들으려 하지 않고, 알려 하지 않고, 혼자서만 살아가려 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진정한 인간人間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그러한 노력이 있다면 조금은 불완전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