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책, 책, 나를 찾읍시다
‘독서’ 의 의미를 물으면 묻는 족족 다른 답이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독서란 여행이고, 또 누군가에게 독서란 학습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억지로도 하기 싫은 일이고 – 그 다의어와 같은 복잡미묘한 행위에 대해 주인공 ‘병일’ 에게 묻는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기 위한 수단’ 쯤으로 답할 것이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파묻혀가는 제 자신을 붙잡아두기 위해 행하는 일. 병일은 그것을 위해 소외된 일상에서 벌어오는 돈 대부분을 독서에 쓰고는 한다.
그런 병일의 일상에 장마가 찾아왔다. 장마와 함께 찾아온 것은 여름감기도 아니오, 억수 같이 내리는 돈뭉치도 아니오, 이렇다 할 삶의 의미나 목표도 아니오, 그가 경멸하는 삶을 사는 사진사 ‘칠성’이다. 칠성은 책에 몰두하고 공장에 갇히듯 소속되어 지내고 있는 병일에게 말한다. 돈을 모아서, 다른 이들과 같이 행복하게 살라. 책 대신 돈을 모아라. 공장을 나와 가게를 차려라, 나처럼! 그의 눈에 독서는 쓸데없는 일에 불과하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저 행복,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그 행복이다.
이는 비단 칠성만의 가치관이 아님을 병일은 잘 알고 있다. 그도 그런 것이, ‘사진사의 설교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희망과 목표는 이러한 사회층 (물론 병일이 자신도 운명적으로 예속된 사회층) 에 관념화한 행복의 목표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라고 책 속에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그러한 희망과 목표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만인의 운명과도 같은 목표일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목표. 그래 병일은 그 희망 같지도 않은 희망에 대해 애써 긍정을 표하지만 진정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긍정한 것은, 자신만의 목표나 행복에 대한 갈피 또한 잡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장맛비처럼 퍼부어지는 현실감들과 그에 저절로 따라오는 불안감 –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온,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동떨어진 제 인생에 대한 – 을 그저 ‘장마의 탓’ 으로 돌리고 도망갈 만큼 병일은 나약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마가 그치며 그의 불안감을 키웠던 칠성의 존재가 사라졌고, 그래 그의 회피는 성공했지만 엄연히 이것은 ‘회피’의 성공이지 ‘해결’이 아니다. 책을 통하여 또다시 그 불안을 잠재울 순 있겠지만 그것 또한 ‘회피’일 따름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그 불안을 해소할 자신만의 방법에 대하여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은 병일의 큰 과제로 남았다. 10만, 20만의 인구들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다시는 이칠성과 같은 현실과 마주하지 않겠다는 병일의 다짐이 영원히 깨지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계속 그는 회피해야만 하는가? 아니다. 그는 제 삶에 대해 좀 더 큰 자신을 갖고 더욱 깊이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에 현실의 모습들을 마냥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좀 더 뚜렷한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나의 존재는 현실 속에서 형성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비단 병일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나를 찾고, 현실을 찾는 것. 우리 모두의 길에 장마처럼 내려질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