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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군사 34선 - 허소, 곽가, 노숙, 육손, 사마의, 천하통일을 이끈 책사들 ㅣ 마니아를 위한 삼국지 시리즈
와타나베 요시히로 지음, 조영렬 옮김 / 서책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곽태의 인물평가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첫째, 후한의 향거리선이 환관의 개입으로 붕괴되었기때문이다. 향리의 서열을 나타내던 향거리선이 환관과의 친밀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전략해버려 사람들은 향거리선을 대신할 새로운 가치 기준이 필요했다.
둘째, 관료로서의 지위가 환관에게 바치는 뇌물의 양에 따라 좌우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인들은 자기들만의 인물 평가 순위를 만들어냈다. 세간의 명성에서 자신의 근거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명사라 부르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명사는 군사의 출신 계층이 되었다. 그 성립에 큰 역할을 한 이가 곽태였다.
조조는 군사를 이렇게 이용했다.
1. 향리사회에 대한 지배 유지와 안정을 담당했다.
2. 정보수집과 분석이다.
3. 전략과 전술의 헌책이다.
4. 집단의 기본 방침, 예를 들어 어떻게 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가 같은 것을 구상하는 일이다.
5. 지배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이다.
사실 군웅의 목표는 지역을 잘 다스리는 것, 자신이 침해받지 않고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가 목표이나, 명사는 다들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진다. 이 차이가 발생하나 군웅은 명사가 가진 지역 사회에서의 영향력 때문에 이들이 필요하고, 명사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시킬 군웅의 정치력이 필요해서 뭉치는 경우다.
명사가 많으면 많은 지역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으나, 아무리 많은 명사라도 이들의 적절한 인재배치가 없다면 군웅간의 대결에서는 명사의 수로 판결이 나지 않고, 우수한 명사 배치의 결과로 판결이 날 수 있다.
조조와 원소의 대결이 그렇다. 원소는 많은 명사가 참여했으나, 부하를 의심하고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평판에만 신경을 쓴다면, 조조와 같이 알맞은 인재를 적절히 쓰고 신상필벌이 확실하여 더욱더 많은 집중을 할 수 있었다. 결국 명사의 적절한 활용이 있었던 조조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