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미셸 딘 지음, 김승욱 옮김 / 마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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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좋아서 한 줄 한줄 꼭꼭 씹어 읽었다. 한국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애들러나 파커 같은 작가들 책이 궁금해진다. 올해 찾은 인생 책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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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 - 게일 루빈 선집
게일 루빈 지음, 임옥희 외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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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한국에서 이 책을 번역할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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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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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어떻게'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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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생의 디자인(2015년 2월, 안그라픽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이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도 해답을 얻지 못할 물음인 것 같다. 동양 사상에 무심했지만,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일본의 선승 마스노 슌묘가 정원과 선 사상을 어떻게 연결시켰는지, 자연, '그러한 그대로'를 인간사에 어떻게 데려와 설명하는지 궁금하다. 정원은 인간이 다듬지만 자연은 인간이 궁극적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마스노 슌묘의 이야기는 정원 만들기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닌 선 사상에서 비롯한 디자인론이자 창작 잠언이다."라는 출판사 평이 궁금증을 돋운다.

 

 

 

 

 

 

 

 

 

 

 

 

자발적 복종(2015년 2월, 생각정원)

복종을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절대권력이란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 오랜 습관이 이어져오면서 종속의 상태를 받아들인 부모 밑에서 자란 후세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자유’를 알아보지 못하고 종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권력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지, 자유를 갈구하지만 누구로부터 왜 어떻게 자유를 (되)찾을 것인지, 그리고 그 자유를 누가 왜 어떻게 견고하게 다져나가야 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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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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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승리. JTBC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 MC 허지웅 씨가 정신승리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그 뜻을 단번에 알 수 있어서 짜증이 났다. 취업이 안 되고 노동 시장 규모가 계속 줄어든다는데 졸업예정자라는 신분으로 남아 있다는 것으로 약간 안심하는 걸 정신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단어, 정말 괴상망측하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야기는 사실 정신승리라는 단어와 딱 맞는다. 내일을 내다볼 수 없는 젊은이들은 오늘의 소소한 편안함을 즐기는 듯해 보인다. 특별히 즐거운 일이 없어도 더 나빠지지 않았다면 그걸로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으니까.

 

이 책에서의 행복은 엄밀하게는 자기 기만과 자기 만족이 뒤섞인 애매한 것이다. 그리고 아마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서도 매우 다른 형태로 나타날 행복이다. 그래서 20~30대를 묶어서 '보통 이러하다'라고 말하는 세대론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보통'은 없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만 있을 뿐이고, 세대를 설명하는 사회적/문화적 대세나 경향이 있다손 치더라도 외피에 불과하다. 그래서 난 이 책이 불편했던 것 같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태어나 자란 청년들은 왜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흥미롭지만, 이들이 한 세대로 묶인다고 공통된 출발점에서 나고 자라진 않았을 것 아닌가.

 

한국에서도 상황은 같다. <88만원 세대>가 일으킨(그리고 부추긴) 세대론은 '세대'를 뭉뚱그린다는 점에서 이미 분석 수준으로서는 한계점이 명확하다. 그리고 (이끌어나갈 미래가 있다는 가정하에) '미래'를 이끌어나갈 것만 같은 청소년과 청년 세대만 주요한 분석 수준이 아닌데 사회는 늘 이들에게만 주목한다. 그래서 세대론은 더 사회의 소통을 어렵게 하고 세대론의 주 대상이 되는 '청년'들은 졸지에 '낭만적 청춘'이 됐다가 '절망사회의 행복한 젊은이들'이 됐다가 하는 것이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책 제목이 품은 이 형용모순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어떻게 절망의 나라에 행복한 젊은이가 생길 수 있나.

 

행복의 배경으로 절망이 깔려 있는 이 시대에 젊은이들은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 '곱게 늙는 것'이야말로 진짜 정신승리가 아닌가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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