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가 -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위기의 한국, 위기의 그리스, 위기의 이집트가 아니다. 위기의 국가다. 포스트 베스트팔렌 체제가 확립되면서 그 지위와 권력이 흔들릴 것 같지 않았던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고 카를로 보르도니와 지그문트 바우만은 단언한다. 한국의 상황만 봐도 그렇다. 국가는 국민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빈곤과 자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일까? 전지구적 금융권력은 주권과 실체를 가지지 않으면서도 각 국가에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국가는 이를 전혀 방어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이제 국가에 없다. 이 시대의 권력은 시민이 위임한 적도, 계약을 맺은 적도 없는 금융에 있다. 이로써 국가는 권력과 정치의 극심한 분리를 경험하며, 사회계약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인 ‘외부로부터의 국민의 보호’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국가를 탄생시킨 근대 그 자체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국가의 틀이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세계를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봐야 할지 시민들은(국민들은) 오히려 헷갈린다. 분노의 목소리가 퍼진다한들 국가는 이를 다룰 권력이 없고, 금융은 이를 들을 이유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한때 엄청난 힘을 보여주었던 99%는 연대의 가능성과 (이 책에서 보르도니가 누차 강조하는) 다중의 역할을 환기시켰지만, 안타깝게도 충분한 정치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국가가 없는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한동안 겪어야 할 막막함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위기의 국가』를 읽으면서 질문이 쌓여갔다. 국가가 권력과 정치를 모두 회복한다면 어떤 모양일까? 이 책에서 바우만이 반복해서 언급하는 권력이라는 것은 과연 시민을 보호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히 하며 전 지구적 금융권력의 세에 밀리지 않는 안정을 되찾는 데 필수적인 것인가? (하지만 바우만은 권력을 되찾는 것, 권력과 정치를 합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도대체 그럼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치 과정을 통해 위임된 주권은 지금 어디에서 떠돌고 있단 말인가? 권력과 정치의 분리를 이용해 시민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 두 지성인의 고차원적인 대담에 비하면 일차원적이고 즉각적인 반발과 같은 질문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마구 생길만큼 보르도니와 바우만의 대담은 흥미롭고, 또 가끔은 어렵다. 지금 침몰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일독해볼 것을 권한다.

 

참고로 표지가 정말 인상적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무너지는 모습. 일러스트 아이디어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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