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속물근성에 대하여 - SBS PD가 들여다본 사물 속 인문학
임찬묵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물건을 사랑한다는 건 때로 속물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임찬묵의 책 《그 남자의 속물근성에 대하여》는 그 ‘속물근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정면으로 끌어안는다. 이 책은 단순한 물욕의 고백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욕망이 어떤 의미를 띠고, 어떻게 한 사람의 철학이 되는지를 차분히 보여주는 사유의 기록이다.


임찬묵은 “사물완상(事物玩賞)”이라는 개념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건을 가지고 노는 동시에 감상하는 이 태도는 얼핏 허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안에 시간의 축적과 감정의 결이 담긴다고 말한다. 홍차 한 잔, 클래식 시계 하나, 오래된 가구나 책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서는 이유다. 그렇게 그는 ‘정신적 사치’라는 낯선 개념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

인다.


직업을 얻어 돈을 벌고, 다양한 술이 쏟아져 나오니 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제일 먼저 파고든 것은 와인이었다. 열심히 책들을 읽고 궁금한 와인을 마셨다. (중략) 그렇게 몇 년을 지냈을까, 문득 허무함이 찾아왔다. 내가 정말 맛을 중심으로 와인을 고르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의문이 생겼다. 비싸고 유명하다고 나에게 맞는 것은 아니었다.

본문 81페이지


저자의 시선은 단지 취향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공자의 ‘문질빈빈(文質彬彬)’에서 균형감 있는 품격을 배우고,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과 베블런의 과시소비 개념을 통해 우리가 왜 어떤 취향을 갖게 되는지 탐구한다. 이론은 이론대로, 하지만 그것이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는 방식이 흥미롭다. 작가는 과거 이스라엘 특파원 시절 겪은 일이나, 중고 부로바 시계를 사게 된 계기, 마리아쥬 프레르 홍차에 빠진 이야기 등을 통해 소비의 뒷면에 자리한 진심을 꺼내놓는다. 그 모든 물건은 결국 그가 살았던 어떤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속물근성’이라는 말이 점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자신을 꾸미기 위한 허영이 아니라, 나를 정성껏 가꾸고 싶다는 조용한 마음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 어떤 물건을, 혹은 어떤 취향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는 작가의 믿음이 글 전반에 담겨 있다.


선생님은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느냐며 30분 넘게 일장 연설을 하셨다. "니가 오락실에서 시간을 낭비할 때 우리 황영조 선수는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고 했다. "너처럼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본믄 144페이지


《그 남자의 속물근성에 대하여》는 단순한 취향 자랑도, 철학 강의도 아니다. 삶을 관통하는 일상의 사소한 물건들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천천히 묻는다. 그리고 말없이 알려준다. 허영이라 치부하던 그 애착들 안에,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의 흔적이 있다고. 누군가는 '속물'이라 비웃을지 모르지만, 작가는 그 속에서 자기를 만든 시간과 감정과 철학을 발견한다. 이 책은 그런 ‘속물’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연서다.


임찬묵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고, 왜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는가. 또, 그 애정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책장을 덮고 나면, 내 책상 위에 놓인 오래된 머그잔 하나조차 조금은 다르게 보이게 된다. 사물과 취향,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 《그 남자의 속물근성에 대하여》는 그렇게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