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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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비어드의 산문집 『축제의 날들』은 ‘삶의 끝에서 다시 삶을 바라보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생과 사, 병과 사랑, 끝과 시작이 기묘하게 맞물리는 이 작품은 자전적 에세이이자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학적 산문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 존재의 가장 내밀한 순간을 포착하며, 우리가 흔히 외면하려 하는 것들을 섬세하고 정직하게 응시한다.


그 중 「워너」는 재난에 맞닥들인 인간의 모습을 비춘다. 가장 소중한 고양이를 구하려고 하지만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비어드는 죽음을 피하거나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죽음이 ‘특별한 사건’이 아닌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그 안에 스민 유머와 고요한 슬픔을 함께 길어 올린다. 무력감과 사랑, 유대와 상실의 감정이 얽히며 독자는 어떤 절대적인 정서로 빠지기보다는, 다양한 복합 감정 속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조율하게 된다.


전에 여기 사셨던 아주머니는 돌아가셨어요. 몸은 썩어 퇴비가 되지만, 우리는 앵무새가 되어 계속 살아간다.

본문 95페이지


그녀의 문장은 간결하지만 섬세하고, 묘사는 사소하지만 강렬하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과 감각을 통해 거대한 존재론적 질문에 도달하는 비어드의 방식은, 마치 레이먼드 카버나 루시아 벌린의 산문을 연상케 한다. 고양이의 몸짓, 침대 시트의 촉감, 창문 너머의 나무 등 작은 요소들이 생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점이다. 일부 작품은 에세이처럼 읽히다가 어느 순간 소설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꿈결처럼 이어진다. ‘이것이 실제인지 허구인지’라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서사의 리듬과 감정의 진실성이다. 조앤 비어드는 글은 장르보다 감정에 충실하며,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남편은 토네이도 때문에 그들 집 인도로 날아온 새끼 고양이를 묻겠다 했지만, 조앤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구덩이에 넣는 마지막 순간에, 고양이가 정말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본문 143페이지

#도서협찬


『축제의 날들』은 아픔과 상실을 말하면서도 슬픔에 함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감정들 속에서 삶의 유머와 따뜻함, 그리고 인간 간의 연결을 발견한다. 그녀는 죽음을 앞둔 존재와의 교감을 그리면서도,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의 감정 역시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읽고 나면 마음 한켠이 묵직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비애가 아니라, 생이라는 커다란 구조물 안에서 우리가 매일 놓치고 있는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일깨움이다. ‘축제의 날들’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처럼, 이 책은 오히려 생의 마지막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눈부시고 찬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다. 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기억과 이미지, 언어가 주도권을 잡게 두는 거다. 작가는 당신이니까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고,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쓸 수 있다.

본문 235페이지


조앤 비어드는 산문은 ‘읽는 경험’을 넘어선 ‘감각의 체험’에 가깝다. 그녀는 우리에게 슬픔을 알려주고, 그 안에서 빛을 발견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축제의 날들』은 삶의 가장 끝자락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고요하고 찬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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