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문장이 이 소설을 관통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했다. 수영이 일하는 동물병원의 구원장도 전수미였고, 전세사기를 친 사람도 전수미였고, 자작나무 숲에서 만난 남자도 전수미였다.
처음에는 전수미와 구원장, 늙은 개들을 버리는 사람들/ 전수영과 할머니, 그리고 늙은 개들의 구도로 평면적인 케릭터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수미도 전수영을 도와 준 적이 있고, 구원장은 늙은 개들의 보호자를 마음편하게 해 준다는 의미로 100% 욕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늙은 개들을 버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정성들여 강아지들을 보살피려고 하지만 비용 문제로, 먹고 살아야 된다는 이유로, 지병을 이유로 아이들을 마음 속에서 버리게 된다. 욕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전수미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도 모르고 살아가기도 하고, 전수영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 평생 가지고 살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전수미이자 전수영인 것이다.
나중에는 수영은 자신의 틀을 깨고 전수미가 아닌 전수영으로 살기를 택한다. 만약 이 이야기가 실제였다면 아마 전수영을 마음 속으로 힘껏 응원했을 것이다.
글의 종류가 소설이다보니 갈등도, 결말도 자세하게 적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전수미에 가까울까 전수영에 가까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전수미이자 전수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