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령의 시간 ㅣ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평점 :

어제 뉴스에는 북한이 러시아에 자신들의 군대를 파병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몇 달 전부터는 남한테 오물 풍선을 보내기도 한 북한은 아직도 우리나라와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마음이 여리고 몸도 약했던 이섭은 일제시대에 학교를 다니면서 일본 치하에서의 대학공부는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의문을 품은 채 귀국했다. 교사가 된 이섭에게는 그때의 생활이 가장 행복했을 것 같다. 그때 첫번째 처인 진이를 만났고 아이를 낳고 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마지막 한때였으니까.
그러나 6.25전쟁때 부인과 아이를 잃고 미자와 다시 결혼해 아이들을 낳았지만 전처와 지용 지호 지은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묻으며 산다. 빨갱이라고 낙인 찍힌 자신의 처지 때문에 친척은 물론이고 자신도 취직을 할 수 없어 충청도에 와 자리 잡은 후 사업도 했지만 번번히 망했고, 아무 것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왔다. 그때에도 이섭은 온갖 영업을 하며 아이들을 지켜내려 노력하지만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쓰다 말고 죽게 된다. 바로 딸의 죽음과 사회안전법 때문이었다.
이섭은 일제 시대에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유령 취급을 받았다. 입신양명이나 출세는 꿈도 꾸지 못했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며 부인과 아이들을 잃고도 숨어다녔고, 빨갱이라는 이유로 취직도 할 수 없었다. 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당한 것이다. 이섭은 끝까지 유령의 삶을 살았다. 유령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영업직도 해보고, 자신의 자서전도 써 보리라 다짐하지만 22장의 원고지만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장면은, 이섭이 끝까지 유령의 삶을 살다 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서 '자서전'은 유령으로 살았던 이섭이 이제는 밖으로 나와 사람으로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소재다. 하지
만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이섭은 죽는 날까지 유령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이 소설 속에도 주인공의 아버지는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취직을 비롯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소설인데,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해학이 많이 섞여 있어 아버지의 인생이 안쓰럽긴 하지만 처절한 아픔이 덜 느껴졌는데, <유령의 시간>은 아버지의 인생이 너무 불쌍하고 처절하고 안타깝게 나타나 있어 눈물이 많이 나는 소설이었다. 이 두소설을 보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지식인들은 사회주의를 순수한 학문으로 받아들였고, 이상적인 사회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었을 뿐, 나라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사회주의자 낙인이 찍혀 가족이나 친척에게도 외면받고 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것을.
다시 돌아와, 아직도 우리는 전쟁 중이다. 전쟁이나 분열은 이 이야기의 이섭과 같은, 사회적으로 죽지도 못하고 살아있지도 않은 유령을 양산한다. 언제든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소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