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손길 온라인 그루밍
김리하 지음, 전명진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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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밍(grooming)은 동물의 털 등을 손질한다는 뜻으로 요즘에는 꾸미는 남성에게 사용하는 단어라고 한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그루밍이라는 단어에 '성범죄'가 붙기 시작했다. groom을 영어 사전에 찾아보면 충격적인 뜻이 한 가지가 있다.

타동사 [VN] (아동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자가 특히 인터넷 채팅을 통해)

상대 아동을 구하다

출처: 네이버 영어사전

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동'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자가 '상대 아동'을 '구하는 것'. '아동'을 '구한다.'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뜻 자체가 너무나도 더럽다. 그루밍 성범죄는 일명 아이 길들이기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게끔 잘해주고 어느 정도 아이와 래포가 형성되었을 때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조금씩 드러내며 아이를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질 나쁜 범죄이다. 그루밍 성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는 자신이 성범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만큼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범죄다. 뒤늦게서야 아이가 깨달았을 때는 친절하고 착한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피해자의 사진, 영상 등을 빌미로 협박하는 범죄자가 있을 뿐이다.

SNS가 발달하면서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들은 카톡 오픈채팅, 틱톡, 인스타, 트위터, 페북, 랜덤채팅 등 다양한 SNS를 사용하고 있다. SNS를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을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SNS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며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들은 정말 많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역시나 '사람'이다.

이 책은 인스타그램에 빠진 여자아이들이 그루밍 성범죄에 휘말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치유해가는 이야기이다. 가람이, 혜주, 미진이, 예린이. 핵심이 되는 아이들은 이 4명의 학생들이다. 인스타그램을 하며 팔로워를 늘리는 혜주와 예린이. 예쁜 언니, 잘생긴 오빠들과 이야기하고 하트를 주고받으며 이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는다. 그 와중에 S대생, 부자, 잘생긴 동하 오빠와 연락하게 되는 혜주. 동하 오빠한테서 여러 선물도 받고 사귀게 된다. 하루하루가 행복하던 혜주에게 동하 오빠는 쇄골까지 옷을 내려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혜주는 사진을 보낸다. 그리고 받은 건 자신의 얼굴과 모르는 여자의 알몸이 합성된 딥페이크 사진. 한편 예린이는 갑자기 키가 크고 살이 빠지면서 주변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그중 인스타를 통해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실제로 만나서 유튜브 편집 기술을 배우기로 한다. 노래방을 같이 갔는데 남자친구는 편집 기술이 얼마나 비싼지 아냐면서 몸으로 때우라고 말하며 성추행과 폭력을 가한다.

혜주가 잘생긴 동하 오빠가 친해지고 사귀게 되는 걸 보며 자신도 모르게 질투를 하게 되는 가람이. 공부가 아니라 인스타, 화장을 하며 온라인 인맥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촌 언니가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였던 미진이는 같은 일을 겪을 뻔한 혜주를 구해준다.

미진이와 가람이 덕분에 빠른 조치가 취해져 더 큰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상처로 뒤덮였다. 상담을 받으며 잘못한 것은 너희가 아니라 그 행동을 한 남자들임을 알고 조금씩 마음을 치유해가는 혜주. 충격을 크게 받아 몸과 마음이 다쳐 시간이 필요한 예린이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야기 끝에는 남학생들의 이야기가 조금 나오는데 미진이 덕분에 몸캠 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빠르게 피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성폭행과 몸캠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남학생 이야기는 별로 딱히 와닿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몸캠은 자신의 성 욕구를 풀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다가 불법으로 찍히는 거고 여자아이들이 겪은 일은 자의가 없이 협박과 회유를 통해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그루밍뿐 아니라 가정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모습이 나오고 아이들이 SNS에 더욱 빠져드는 이유가 나오기도 한다. 과학고를 목표로 친구도 가려 사귀고 공부만 하길 원하는 가람이의 부모님, 돈을 버는 것만 신경 쓰고 아이와의 관계를 돈으로 해결하는 혜주의 부모님. 바쁜 부모의 자녀,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자녀는 상대적으로 스마트폰을 더 자주, 많이 한다. 그게 즐기기 위해서든 도피를 위해서든 말이다. 그만큼 SNS에 노출이 많이 되어 있는데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안 좋은 것들을 쭈욱 빨아들여서 뭔가 문제가 생겼다 싶었을 땐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위한 도서다 보니 수위가 매우 낮고 피해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데 현실은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또한, 실제로는 도움을 주는 사람의 역량과 대처 역시도 현실과는 매우 다를지도 모른다. 이 일이 발설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이를 걱정하기보단 아이를 비난하고 부모를 욕하는 2차 가해를 가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조심하라'라는 이 말이 너무나도 불공평하다는 걸 느낀다. 대체 왜 내가 조심해야 하는가? 내가 조심한다고 피해지는 일인가?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할 때 하는 말이라곤 '조심하라'라는 말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지 말고 따라가지 말고, 어딘가를 갈 때에는 항상 부모님께 행선지를 알려야 한다, 혹시나 피해를 입었을 때에는 몸과 옷을 그대로 둔 채 빨리 선생님과 부모님께 알려라, 이런 것들을 말한다. 이걸 가르치는 나도 의문이다. 아이들 보고 조심하라고 해서 성범죄가 안 일어나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뭐가 있는가? 요즘 내가 하는 말은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뜻을 담은 말들뿐이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함부로 찍지 말고 공유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의 기분은 어떨지 생각해라, 성차별적인 발언과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말을 하지 마라 등 우리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뿐.

성범죄가 계속 일어나는 건, 그중에서도 아이를 대상으로 한 아동 성범죄가 일어나는 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낙태죄는 태아도 생명이라며 그 세포 덩어리 하나 없애는 것도 막으면서 몸과 정신을 파괴하는 성범죄에 대해선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또 하나, 아이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모든 광고, 영상들도 문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걸까?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아들과 딸 중 낳고 싶은 아이의 성별은 무엇이냐 물었을 때, 남자애를 선택한다는 말도 있다. 남자애는 남자애 하나만 조심시키면 되지만 여자애는 모든 남자들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라던가. 조심시키는 것과 조심해야 하는 건 너무 차이가 있다. 시키는 건 내 의지에 따라 행동의 여부가 결정되는 거지만 조심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언제쯤이 되어야 이런 걱정 없이 편안하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특정 성별이 가진 권력 중 가장 부러운 건 성범죄 걱정 없이 술을 진탕 마시든,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되는 것. 택시를 탈 때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타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세상이 너무나도 추악하고 더러운 부분이 많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아이들은 아이들 자체로 바라봐 줬으면. 더 나아가 모든 여성들이 아무런 걱정과 불안 없이 생활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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