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호실의 기적
쥘리앵 상드렐 지음, 유민정 옮김 / 달의시간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작가인 쥘리앵 상드렐의 첫 소설인 <405호실의 기적>은 첫 작품임에도 25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는 큰 성공을 이루었다고 한다.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누구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랬으니까!

2017년 1월 7일 토요일, 10시 32분. 델마의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최악의 시간. 회사에서 온 업무연락을 받던 중 아들 루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것도 눈 앞에서. 루이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던 델마는 한없이 무너져내린다. 아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한 달 후에는 연명치료를 그만둘 수도 있음을 알게 된 델마는 다가오는 루이의 죽음에서 회피하려 한다. 루이의 방을 청소하던 중 루이가 적어둔 '나의 기적 노트'를 발견하고 아들의 목표를 대신 이뤄주기 위해 마음을 다 잡고 용감한 도전을 하게 된다.

델마의 이야기와 루이의 병상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데 자신이 적어둔 항목들을 이뤄나가는 엄마와 할머니를 보며 조금씩 힘을 내는 루이를 보며 뭔가 마음이 찡했다.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처음에는 '엄마의 용감한 도전'이라는 문구를 보고 아빠는 대체 무엇을 하길래 엄마만 도전을 하는가 싶었다. 아빠는 불륜남에 루이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델마가 어떤 마음으로 루이를 홀로 키워왔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 루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델마의 세상이 무너진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계에 의지해 살아있기만 한 그런 아들을 보며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자신, 평소에 루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자신을 욕하고 깎아내리며 후회하는 델마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마치 내가 델마인 것처럼 이입하게 만드는 델마의 말 하나하나가 내 마음까지 아프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엄마가 생각이 났다. 델마가 하던 후회가 내가 했던 후회와 똑같았기에 말이다. 있을 때 잘할 걸, 더 관심을 가질 걸, 한 번 더 웃어줄 걸. 아무리 후회해도 이제는 아무런 방법이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델마는 강한 사람이었다. 약한 것 같으면서도 누구보다 강한. 우연히 발견한 아들의 기적노트를 하나씩 이뤄나가는 델마의 도전정신과 용감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사실 나였다면 조금이라도 내 눈에 내 사람을 담아두고 싶어 병실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들도 하나씩 이뤄가는 그 모습이 누구보다 멋졌다.

불편했던 건 루이가 수학 선생님을 성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이가 원하기에 우선 실행하고 잘못된 점을 알려주긴 했지만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한테는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항목이었다. 학생이 나를 성적대상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어서 진심 불쾌했다. '그 나이 때 남자애들은 다 그래요. 평소에 선생님이 처신을 잘못한거죠.'라며 실제로 학폭에서 범죄를 감싸주는 말도 많이 들어서 더더욱.

성인이 되고 직장을 가지게 되고 엄마라는 하나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서 '나'를 잃어가는 사람은 정말 많을 것이다. 우리 엄마도 항상 ㅇㅇ엄마라고 불렸으니까 말이다. 본인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나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본인이 하고 싶었던 걸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린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실히 느껴진다. 엄마는 신이 아니라는 것.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이 책에서 또 의미있게 본 장면은 워킹맘이었던 델마가 여성차별을 하는 회사에서 퇴사를 한 것. 공식적인 정책으로는 양성평등을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차별이 심했던 그 회사. 빅보스의 따귀를 때리고 나온 건 짜릿했다. '기꺼이요. 대표님.' 유쾌, 상쾌, 통쾌!

언제부턴가 여자의 일로 고착화된 육아와 경제 생활을 함께하는 여성을 부르는 말인 워킹맘. '집에 가서 애나 보지 그래.', '여자들이 일을 하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등 실제로 현장에서도 많이 들어본 말이라서 성평등이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 느꼈다. 그래서인지 저절로 내 커리어를 더 신경쓰게 되더라. 대체 누구 좋으라고 애를 낳나 싶다. 그렇게 출생율이 낮다며 말하면서도 임산부나 여성을 존중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애를 낳아주고 집안일 해 줄 하나의 도구로만 여성을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다.

루이의 기적 노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델마가 더 행복해보여서 다행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나도 나만의 기적 노트를 만들어 살아가는 동안 하나씩 이뤄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마처럼 파격적인 행동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나라면 절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행동을 성공한다면 또 다른 용기가 샘솟을 것 같기도! 작은 공책을 준비해서 오늘부터 하나씩 써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