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책 끝을 접다’를 쭉 훑어보던 중 무서운 제목의 포스트를 보았다. ‘돈 많은 노인이 젊은 신체를 사서 한 일’이라는 제목의 포스트, 커다란 손이 야구 선수를 향해 뻗어있는 소름끼치는 그림과 함께. 그 포스트를 읽고 나니 ‘이 책은 꼭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특이한 소재. 국내소설이라는 것이 가장 좋았다. 책을 빌릴 때엔 책이 너무 두꺼워서 깜짝 놀랐다. 이걸 과연 들고 보면 손목이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약 540쪽의 이 이야기는 야구 선수인 준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메이저리그를 꿈꾸며 어렸을 때부터 야구에 매진해 온 준석에게 교통사고가 난다. 의도된 교통사고로 준석은 경에게 10년 간의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된다. 준석의 머리에 연결체를 넣고 그 연결체를 통해 누군가가 준석을 조종한다는 것. 주변을 통제하고 준석의 몸으로 젊음을 누리며 목표를 이뤄가는 존재 파우스트가 있다는 것이다. 준석은 파우스터로 파우스트가 조종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꾸던 꿈이 진짜 자기가 원했던 꿈인지, 파우스트가 원했던 꿈인지 조차 헷갈릴 정도로 오랜 기간동안 준석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한 사람. 야구 인생에 방해물은 가차없이 없애고 최선의, 최고의 환경을 지켜주기 위해 뒷공작을 한다.
이 책은 준석이 자신의 파우스트를 찾아 자유를 얻기 위한 여정으로 진행되는데 좀 불편한 부분이 많다. 준석의 여자친구인 지수가 죽고 자신의 몸과 정신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준석을 위해 파우스트인 태근은 여자와 명품을 ‘제공’, ‘공급’한다. ‘여자’를 제공하고 공급? 대체 여자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건지 화딱지 나게 하는 표현이다. 여자들이 명품지갑 같이 훌륭하고, 자기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다거나 젊은 여자 다리를 보고 흥분을 느끼는 것. 정말 같잖다. 그 중 가장 웃긴 건 준석 역시 ‘제공’받은 여자와 함께 성관계를 맺는데 모든 탓을 파우스트에게 돌리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자기가 해놓고 왜 남탓? 안했어야지. 마치 성욕은 본능이다라며 자신을 짐승으로 대변하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같았다. 또, 여자 파우스트인 남선에 대한 묘사가 늙은이, 얼굴이 다 무너진, 노파 등 다른 남자 파우스트보다 좀 추레하고 모욕적이게 표현되는 부분을 보며 참 안타까웠다.
어쨌든, 불편한 부분이 많았지만 나름 책 자체는 재미있다. 반전도 있고. 야구를 잘 모르는 나는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 우리 삶에 파우스트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늙은 어떤 사람의 젊음을, 잊지 못한 꿈을 이루게 하는 대체품, 대용품, 노예, 도구가 되었다면? 또는 내가 늙었을 때 나의 꿈을 대신 이뤄줄 파우스터를 얻게 되었다면? 정말 최악이지 않을까.
등장인물인 샤론이 했던 말이 참 와닿았다.
“가장 위대한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이야. 늙으면 기력이 쇠하는 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자연의 명령인거야. 하지만 인간은 늘 저항하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인간은 곧 죽고 말거든. 헤엄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어떤 물고기처럼. 우리 인간은 죽는 그날까지 존재의 어리석음을 가동해 세상에 해를 입히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잘 설명한 말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파우스트’ 고전을 읽지 않아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이번 기회에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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