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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기억 하나.
초등학교 5학년. 머리를 길게 묶고 다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말총머리라고 불렸던 아이. 책상 모퉁이에 서 있던 자세를 트집 잡으며 이상하다며 놀리던 아이들. 그 사이에서 뭐가 이상하건지 의아하면서도 방관했던 나.
기억 둘.
공부를 잘 하고 이쁘기까지 했던 아이.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표현이 썩 자연스럽지 못했던 아이.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를 고스란히 함께 올라 온 아이들 틈에서 어느 새 잘난 척 하는 아이로 인식되어 배척되던 그 아이가 같은 대학교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우연히 교정에서 마주친 날, 어쩌다 그랬는지 카페에 서 함께 커피를 마셨다. 긴 시간을 알고 지내면서도 둘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눠 본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시간이 지나고 내게 남겨진 것은 부끄러움. 그 아이가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왜곡된 소문에 의한 오해.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굳이 친하려 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했던 동조.
왜 그랬을까? 나를 중심에 둔 상대적 거리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굳이 애써 상황을 바로 잡기보다는 가까운 쪽에 있는 사람들과의 동조가 손쉽고 편했기 때문이었다.
단체전은 없고 개인전만 있는 학교 혹은 사회. 그 속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혼자 남겨지는 것. 혼자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속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밀어낸다. 근거리에 있는 사람들과는 범주화를 통해 끊임없이 묶이려고 하고 범주를 강하게 엮여내기 위해 바깥 쪽의 누군가와 구분을 한다. 구분은 차별을 만들어내고 차별은 고통을 안겨준다. 중요한 건 두렵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일텐데, 대체로 선택은 공포와 욕망 안에서 이루어진다.
엄마, 만지, 천지, 미란, 미라, 화연, 곽만호, 오대오, 화연, 화연의 부모, 미소. 그들의 관계는 서로의 두려움을 밀어 내기에는 약했다. 포장 없이 지나치게 직설적이거나, 간략했고, 영악했다. 어쩌면 서로는 서로에게 베란다에 살고 있는 쥐였는지 모르겠다. 함께 살지만 함께 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인지 탈출하는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각자가 자신의 눈과 잣대로만 대했던 것은 아닌지.
그런데, 여전히 천지의 선택이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 아이에게 우아하진 않더라도 따뜻한 인사가 건네졌으면 다른 선택을 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