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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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는 사람.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드는 전과 7범.

스스로를 야수에서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

그리고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돌베개의 대표이기도 했던, 

임승남.


인생에도 맥락이라는 게 있어서 ‘그의 어린 시절이 이랬으니, 이렇게 살았다’라는 예측 가능한 범주가 있기 마련인데, 이 인생은 달랐다.


전쟁 고아로, 남대문 지하도의 앵벌이와 아동보호소 생활을 하다가 도둑질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든 그가,‘임승남’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쓰기 위해 연필을 잡는 장면이 나온다. 힘 조절이 안 되어 동그라미를 그릴 수도, 직선을 바르게 그을 수도 없었다. 이름을 써 내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의 과정이 그려진다.


손에 힘을 주지 말자.

종이와 친해지자.

연필과도 친해지자.p62


보통의 사람에겐 기억조차 없는 자연스런 사회화의 과정이 그에게서는 작심하고 의도하고 애쓴 사건들이다. 


교도소에서 접한 『새 마음의 샘터』라는 명언과 격언이 실린 책을 읽고 새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본능대로 살아가던 그가 스스로 인간이 되기를 결심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힘겹게 펼쳐진다. 물론 쉽지 않았다. 새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를 반복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가장 큰 것이 그가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전쟁이 발발한 한국에서, 네 다섯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인간이 그야말로 정글과도 같은 공간에서의 생존을 위한 노력은 본능이 주가 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스스로를 인간으로 성장시키고자 마음 먹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평온했던 내 삶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치열했다. 노력을 통해, 그는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진국’인 인간이 되었다. 


그후,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들을 읽으면서 시야를 구조적으로 넓히기 시작한다. 그때 그가 느낀 마음을 그대로 옮겨본다.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인간쓰레기들은 나처럼 교도소를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는 이들뿐인 줄 알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같은 놈이 평범한 인간으로 변신하면 이 사회의 물이 조금은 맑아지는 줄로만 알고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쳤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노예나 머슴처럼 다루고 부려먹는 또 다른 이들이, 실은 부모의 사랑도 받고 교육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회의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을 진즉 알았다면 애써 그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마음을 잡는 시늉만 내면서, 잔머리를 굴려 쉽게 도둑질한 돈으로 편히 살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갑자기 허망해졌다. 한 인간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애쓴 나의 모든 노력이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내가 우리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고 떳떳하게 숨을 쉬고 살아가는 보람과 긍지마저 사라졌다.p145


그후, 자신이 숨 쉬고 살아가는 것과 밥 먹고  똥 싸는 모든 행위는 오직 박정희의 장기 집권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기 위한 것이 되게끔 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만약 어떤 인생이라도 지금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싫을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면, 그것은 올바른 인간에 대한 갈망과 열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고통 또한 아주 귀하다.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몸과 마음이 한층 성숙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답게 사는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도전하는 정신이야말로 본능대로 살아가는 야수와 다른,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니겠는가.p254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그 과정에서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온몸을 다 바쳐 세상을 향해 뛰어든 경험을 한 사람.


그가 전하는 말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부딪고 깨어지는 희생이나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내 삶과 사회를 위해 분투해야겠다는 마음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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