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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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읽히는 책이었다. 

마지막까지 몇 장이 남지 않았을 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사건들이 남은 몇 장 안에 어떻게  끝이 날 수 있을까? 마지막 문장을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2편이 있구나. 가제본으로 받은 책은 아직 책은 출간되지 않았고, 사건의 긴박감은 절정에 달했는데 더이상 읽을 것이 없다니!(알라딘에 2권 주문 넣어두었습니다.)


책은 2021년 12월 8일의 기록으로 시작된다.


“시체는 계단 가장 아래에 있었다.”


일단 살인(?) 혹은 사고(?)가 있었고,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2021년 9월 11일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교사를 거쳐 하원의원이 된 엠마.

아내이자 엄마

성공한 여성에게 따라 붙는 여러 일들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커피, 때때로 스티키번 빵, 과장된 감사 인사, 포스트잇 메모 속 스마일 그림,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선물하는 사치스러운 화장품,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이, 내 직원들에게서 충성심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화폐였다.p44


하원의원으로서 성공적으로 뉴스에 등장한 날, 


엠마는 숨이 막힐 정도로 멋졌다. 화려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했다. 카메라가 아닌 기자를 향해 말하는 모습은 조금 딱딱해 보였지만, 열정 넘치고 진정성 있게 보였다. 데이비드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p203


그의 남편인 데이비드는 엠마의 성공에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결국 남편은 딸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캐롤라인과 관계가 깊어지고 이혼에 이른다. 

이혼을 겪으면서 느끼는 엠마의 감정을 수치심과 슬픔, 실패감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슬픔과 실패감은 이혼이라는 행위와 연결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왜 이 지점에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왜 그 감정이 이해되는지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도 여러 경우에 수치심을 느끼는 엠마의 상황이 나온다.)

여성의 사회적 성공에 따라 붙는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함께 살 때 그가 이런 모습이었다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을까? 탄탄해진 복부와 선명하게 드러난 팔다리 근육을 의식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과거에 운동 공포증에 시달리던 전남편은 새로운 기운을 얻었고, 어린 아내로 인해 활력이 생겼다.p48


딸의 문제로 방문한 예전 자신의 집이자, 캐롤라인에게 넘겨준 집에서 만난 남편을 보며 느낀 엠마의 미안함(?)과 함께 그의 어린 아내인 캐롤라인에 대한 위축감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캐롤라인은 어떤가? 


캐롤라인은 아기가 없어 자신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그래서 플로라를 더욱 소중히 여기기도 했다. 이번 만남이 그리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그러니까 불륜으로 얻은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낼 기회일지 몰랐다. 유일한 기회였고, 반드시 제대로 해내야 했다. p205


그 역시 자신의 지위에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두 여성이 다른 위치에서 결핍을 가지고 그것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부단하게 이루어진다. 


“강압적인 통제와 여성을 향한 폭력만이 아니라 인터넷이 우리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에요. 단순히 파괴적일 뿐 아니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어린 여성이 첫 남자친구에게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가장 가슴 아픈 방식의 모욕을 당했으니, 무엇보다 한 인간의 비극적 사건이지만, 그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녔어요.” p77


책을 읽으면서 이런 사건의 보편성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그 많은 일들이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니. 여성이라는 지위의 취약성이 크게 다가왔다.


연인으로부터 불법 촬영과 인터넷 유포라는 상황에 놓인 여성의 보호를 위해 애쓰는 엠마.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딸 플로라의 순간적인 복수심에 의한 탈의실 영상 촬영 건으로 그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야말로 모두 연결된 사슬 속 한 고리였던 것이다. 


스토리가 주는 긴장과 재미와 함께 인물들의 처지와 상황에 대한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묘사가 치밀하게 이루어져 있어 촘촘하게 밀도 높은 책을 읽을 때 느껴지는 기쁨이 컸다.(넷플릭스팀에 의해 영상화가 확정될 만하다.)

남은 2권으로 그 재미를 마저 채워야겠다. 그리고 주인공인 엠마가 명예를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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