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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ㅣ 라면 교양 시리즈 (시즌2) 1
박윤영.채준우 지음 / 뜨인돌 / 2023년 10월
평점 :
# 입사 면접 장면
대기실에 의자가 없다. 전 직원이 휠체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의자가 필요없는 회사이다. 비장애인 A는 멀뚱멀뚱 서있기가 뭐하다. 면접실. 다들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혼자 서서 면접을 본다. 쏟아지는 시선들 ‘왜 저런 친구가 왔지?’, ‘누가 불렀어?’
비장애인이 없는 회사이니 의자가 없고, 휠체어 동선에 방해가 될까 우려된다는 면접관의 말에 A는 합격하면 접이식 의자를 사서 들고 출퇴근 하겠다는 답변을 한다. 결과는 ‘만장일치 탈락’ p70 어느 비장애인 취업 준비생의 일기 내용 요약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부끄럽게도 현실이다. 주어를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바꾸면 말이다.
윤영씨는 희귀질환 골형성부전증(특별한 원인이 없이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무례한 시선은 너무 피곤해서, 아무도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 윤영씨와 함께 어디든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준우씨가 함께 책을 썼다.
윤영씨와 준우씨는 다르다.
그런데,
사람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다르다는 기준이 장애의 유무로 구분될 때, 한국은 몹시 폭력적이고 무례한 공간이 된다.
“장애를 거부하지 않는 부모의 태도는 장애 청소년의 권리를 높여준다. 그리고, 부모가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장애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다.” p52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어색함과 난처함이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뭔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이다.” p57
책의 곳곳에 비장애인인 내가 평소 고민했던 지점의 대답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장애인이 아닌데도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장애인이 될 확률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p153
장애 체험 교육에서 항상 나오는 “여러분도 예비 장애인이에요.”라는 발언에 저자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공감은 그렇게 끌어내는 게 아니라고. 나도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니 남일이 아니라는 이기심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동료로서 누구에게나 인권은 있고 지켜져야 하는 건 그냥, 당연한 일이라고 말이다.
“2022년 4월, 전장연의 박경석 대표는 전과 27범이 되었다. 20년간 장애인 인권을 위한 집회와 시위를 하면서 일반교통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을 수도 없이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전과 27범’이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는 불법을 저지르기로 결심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리러니하게도, 그에게 전과가 쌓일수록 윤영은 점점 더 사람처럼 살 수 있게 되었다.”p231
대학생 때, 버스 앞에서 쇠사슬로 몸을 묶고 싸우던 그를 봤었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혜화역 승강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투쟁하는 박경석 대표의 모습을 봤다. 흰머리가 많아지고 주름이 늘어난 박경석 대표가 예전에 본 모습 그대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끝까지 투쟁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운 한편, 이 굳건한 벽을 아직도 허물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다른 사람들이 곤란을 겪고 있는지 여부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인권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남의 처지와 아픔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것. 그래서 생각과 태도, 말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인권 감수성이다.”p244
“혹시 나의 말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기를 권한다.” p245
‘입장 바꿔 생각하기’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환영받길 원한다.”p254
“그래서 환영에 참여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좋겠어요. 환영하는 일이야말로 장애를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걸 멈출 수 있게 하니까요”p257
윤영씨와 준우씨가 바라는 세상이다.
책은 같은 상황에 대해 윤영씨와 준우씨의 입장을 교차하여 보여주고, 챕터마다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의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여 상상을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장애인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다는 것의 실제적인 모습을 그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는 것부터 시작이니까.
그래서 더이상
“둘 다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말로 지은이를 소개하지 않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사랑스럽고 야무진 윤영씨와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느껴지는 따뜻하고 듬직한 준우씨의 알콩달콩 일상이 평범하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다름을 차별로 대하지 않는 평범한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