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날리면 -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
박성제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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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동방아 순방길에 MBC 기자단을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을 불허한다는 대통령실 발표가 있었다. 치졸할 행위였다.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보도한 복수였다.(나는 아직도 바이든으로 들리는 귀를 가지고 있다)
한동안 보지 않던 MBC 뉴스를 시간 맞춰 시청했다. 캐리어와 촬영 장비, 취재 도구를 잔뜩 이고 지고 끌며 공항으로 향하던 MBC 기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몰상식의 일상화. 그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에 MBC 전 사장이었던 박성제씨가 책을 출간했다. 언론인답게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MBC를 날리면>

“중국 진나라 때 권력에 눈이 먼 조고라는 환관이 있었다. 어리석은 황제를 꼬드겨 승상이 된 후 어전에 사슴 한마리를 끌어다놓고 말이라고 불렀다. 그의 권세를 두려워한 많은 신하들이 말이라고 맞장구쳤지만,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도 있었다. 조고는 거짓으로 죄를 덮어씌워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P13) 지록위마”

책은 <사기>의 ‘지록위마’를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1부 MBC 살리기1: 험난한 뉴스 재건의 길
2부 MBC 살리기2: 공영방송 사장은 저널리즘으로 평가받는다
3부 ‘MBC 죽이기‘의 시작
4부 언론, 어떻게 바꿀 것인가

2012년 공정방송 파업으로 해직당한 후, 2018년 복직하여 보도국장을 거쳐 MBC 사장이 된 그는 세월호 보도를 거치면서 손석희라는 리더를 만난 JTBC가 어떻게 조직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여주며 리더의 중요성을 말한다.

“언론사처럼 구성원들의 자존심이 센 조직에서 뉴스를 책임지는 국장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까? 평등한 소통, 민주적 의견 수렴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개혁을 위해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시기에는 의지와 실행력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리더는 결정하는 자리다. 의견 수렴은 충분히 하되, 돌파할 때는 돌파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P81)

‘엠빙신’으로도 불리던 MBC가 사립유치원 운영 비리, 김용균씨 사망, 버닝썬 게이트와 고성 산불 보도를 거치며 신뢰도 1위를 기록한다. 언론은 무엇보다 시청자를 믿고 우직하게 사회적 의제를 찾고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지난 위기와 아픔 속에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하여 세월호 유족이 건넨 노란 리본을 단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다.
‘중립’이라는 태도가 어떤 상황에서 매우 비겁하게 작용하는 것을 많이 접한다. 저자 역시 ‘진실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한다.

“객관적인 언론인 같은 건 없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객관성‘이라는 말을 쓸 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밝히는 게 중요하다…좋은 언론인은 균형을 찾지 않는다.” (p198 마리아 레사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북하우스 인용)

이후 대통령 장모 최은순의 수상한 소송, 전용기 민간인 탑승, 김건희 녹취록, 바이든-날리면 보도가 이어지면서 바뀐 정권의 매서운 칼바람이 MBC로 불어온다. 방송장악 기술자 이동관의 컴백과 MBC 민영화 음모, KBS 수신로 분리 징수 협박으로 언론 장악을 촘촘하게 완성하려는 정권에 맞서 공영 방송 지키기와 함께 언론개혁이 이루어져야 함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언론 개혁이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의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동의한다.
‘나쁜 언론’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좋은 언론’이 많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도록 법과 제도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어떻게?

정권에 바른 말을 하는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언론 개혁은 언론인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다. 아직 언론에 대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은가 보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 방법론적으로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언론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좋은 언론인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여러 언론인들이 있기에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미디어 수용자로서 수많은 그릇된 정보 속에서 ‘진짜 뉴스, 좋은 언론인’을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 스스로도 애쓰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오랜 시간 피 흘리며 쫓아 보낸 어둠의 시간이 또 덮치고 있다.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알 수 없다.
그 답은 과거에도 그랬듯, MBC 구성원과 시민들에게 달렸다.
꺾이지 않는 저널리스트들의 신념과
잠들지 않는 시민의식이
죽었던 MBC를 살려냈다.
이제 다시 싸움의 시작이다. MBC 구하기”(p226)

MBC가 ‘만나면 좋은 친구’로 계속 남아 있길 응원한다.

끝나지 않는 공영방송 수난사.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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