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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6월 항쟁 30주년.
전야제에 대학 동창들이 시청 광장에 함께 모였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감정들이 올라왔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나 보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TV로 중계되는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으며 순간 울컥해지며 눈물이 났다. 톡방에 글을 올렸더니 다들 같은 마음이라며 공감의 메시지를 전했다. 위로. 명확했다.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두산백과 두피디아)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 세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갖고 있는 역설적 한계에 대해 책은 여러 측면에서 접근하여 문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 제도로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작은 단위의, 일상적인 민주주의에 주목하라고 한다. 특히 민주주의의 마음에.
민주주의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내용인 만큼 여러 개념과 서술에서도 저자의 마음이 많이 엿보인다. 일반적으로 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작은 자’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작은 자의 본질은 마치 비가 내리는 날 작은 우산을 들고 사람과 차들을 피해 천천히 길을 걷는 사람처럼 이 세상에서 많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존재, 이 땅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면서 많은 것을 소비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책은 작은 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대표의 한계, 작은 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않는 정책의 한계, 그럼에도 철인왕과 같은 능력자를 대표로 선출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한계, 그 체제를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관료제의 영혼없음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바로 문제다.-로널드 레이건, 1981년 1월 20일 미국 대통령 취임사”
권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올바르게 권력을 행사할 사람일 수 있다는 권력의 역설을 지적하면서 ‘대표자의 선출 방법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무엇이, 누가, 누구에 의해 대표되는가, 그리서 무엇이, 누가, 누구에 의해 대표되지 않는가’(p95)에 주목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결국,
민주주의는 정치체제, 제도가 아닌 마음에 초점을 두어야 함을 말한다.
‘작은 공(共)’_국가 단위가 아닌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의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 그 이름으로 인해 억압되지 않는 삶의 단위(p304)
“현실 정치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우리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우리의 대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20대 여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이념의 세례를 받은 기성 세대들은 정치적 무관심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일상은 동물권을 위해 채식을 하고 있으며,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옷을 사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노숙자 야학에서 봉사를 하며,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공공성과 작은 공 측면에서 희망이다.
절망의 역설은 희망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민주주의의 역설에 공감하면서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