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가는 길 1 _정용연 "화전길은 버금이고 근친길이 으뜸이랴! "봄꽃이 세상에 수놓은 싱그러움이 아무리 좋다한들 친정가는 길에 비할까. 조선의 시집간 여인들은 일년중 하루의 말미를 얻어 '반보기'를 한다. 친정과 중간 지점에서 엄마를 만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봐야 반나절 남짓한 이시간보다 여인들이 항상 꿈꾸는 것은 친정으로 가는 '근친'이다. 친정가는 길은 두 주인공 중 하나인 '송심'이 시집간지 6년만에 얻은 근친으로 시작한다. 겨우 닷새의 말미를 얻었다. 친정에 온 송심은 날아갈듯 편하지만 이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친정에서 고생하는 동서를 보니 시집에 있는 자신을 보는 것 같다. 그 거울같은 모습에 송심은 이내 팔을 걷어부친다. 어느날 송심은 시어머니가 건내준 진서(한자)를 보고도 읽지 못한다. 이는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내와 관련된 질문엔 막힘이 없다.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에 기회조차 없었지만 생활에 있어서는 이보다 현명한 사람일 수 없다. 얼마 후 송심은 동서를 맞이하게 된다. 새로 시집에 올 동서는 진서를 읽고 쓸 줄 안다고 한다. 이상하게 경계심과 시기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내 이 책의 두주인공은 함께 협력하고 같이 성장하는 관계가 된다. 송심의 동서 숙영은 당차고 행동력이 있다. 그러면서도 시집의 가부장적 위계질서 아래 놓인 형님 은송을 존중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연대한다. 그 질서아래 여성은 차별받는 존재다. 시집을 간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은 지워지고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엄마로서 해야하는 의무만 부여받는다. 여성으로서의 존재가치는 삭제된다. 이 책은 만화로 구성돼있어 두 주인공이 놓인 이시대 여성의 삶이 생생히 전달된다. 어릴 적 할머니를 통해 어렴풋이 들었던 시대의 억압을 품은 용어, 이야기들이 이 만화를 통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억압받은 여성들의 삶이 내가 짐작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겠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 책이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책의 초중반을 읽어나가며 느낀 분위기는 고요함이란 말이 적합할듯하다. 하지만 중반이후부턴 색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전환되고 박진감이 더해지는 건 저자가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소외와 차별받는 존재로만 가둬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영이 역병으로 남편을 잃고 나서부턴 이야기가 급변한다. 이시대, 남편을 먼저떠나보낸 여인들의 숙명은 수절과부였다. 숙영은 시집온지 네번째해 친정으로 근친을 가는데 그길로 돌아오지 않는다. 사내노비와 바람나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숙영은 수절과부의 운명을 거부했다. 송심의 남편은 추노를 동반해 숙영을 찾아 떠나는데, 그길로 남편 경용도 소식이 두절된다. 10개월이 지나자 송심이 남편과 동서를 찾아 직접 길을 나선다. 그들을 찾아 서북 지역으로 가면서 이야기는 종잡을 수는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1부는 이즈음에서 마무리된다. 저자는 두 주인공을 여자가 아니라 운명의 개척자이자 역사의 중심에 놓였던 사람으로 대한다. 2부는 차별의 땅 서북지역에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한다. 2부가 기대되는 건 이 만화가 홍경래의 난을 역사적 배경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의 땅, 소외된 사람들. 그 속의 은송심과 함숙영. 여인, 아녀자가 아니라 세글자 온전히 이름을 가진 주체로서 차별의 격랑속을 헤쳐갈 것이다.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그 이야기가 무엇보다 귀하고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