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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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발자취_예고된 갈등> 1945_마이클 돕스










냉전의 발자취: 예고된 갈등





마이클돕스의 3부작은 냉전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이다. 그중에서도 1945는 냉전의 첫발자국과도 같다. 보통 모든 첫발자국은 뚜렷히 남는다. 그 어떤 연결들도 시작점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른 발자취의 연결고리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연결의 시작점이자 단절점.

하지만 냉전에는 그 첫발자국이 없다. 보다 정확히는 첫발자국이라 주장?하는 발자취들만 여럿있을뿐이다. 1945를 꺼내든 것은 1962와 1991을 통해 냉전의 절정과 해소를 맛보았음에도 그 시작인 발발에 대해선 충분한 만족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45가 마이클돕스를 통해 그려낼 냉전의 시작이 궁금했다.





다소 싱거운 결말인지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냉전의 시작이라 꼬집어 부를만한 단일한 사건은 없었다. 다만, 1945년은 2차세계대전 종식과 미,소간의 대립이 표면화된 시기로 1945에서는 냉전의 초기형성이라 부를만한 일들을 면밀히 조명하고 있었다. 그 중심엔 얄타회담에서 포츠담회담으로까지 이어지는 6개월이 있다. 1945가 들려주는 역사는 단일한 사건이라기보단 이야기에 가깝고, 이야기라기 보단, 역사의 시대성을 관통하는 생생한 인터뷰라 보고 싶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일수록 복합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그런 사건에 단일하고 고정된 인식만이 존재하는 것이 어쩌면 더욱 이상한 일일지 모른다. 냉전이란 이슈에는 이념적, 정치적, 국가주의적, 제국주의적 요소가 다 버무려져있다. 마이클돕스가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은 객관적 자료를 다층위적으로 확보하여 맥락과 배경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가 활용하는 것은 관련 인터뷰나 회고록, 기밀문서 등이 주를 이루는데, 만일 그것이 어떤 '발언'이라면 이 자료들이 단편적인 발언과 역사인식에 맥락이라는 생명을 불어 넣게 된다. 예를들어 얄타나 포츠담회담에서 영국총리인 처칠이 대제국의 원수인 스탈린을 탐탁치 않아 하는 면모를 여러번 보이는데 이는 단순히 스탈린이란 인물에 대한 개인적 평가가 아니라 그속에는 미,소 양국에 비해 미미한 영향력을 지닌 영국의 수상이란 위치, 제국주의적 세력전쟁에 있어 유럽대륙 동쪽의 강력한 상대 소련에 대한 두려움, 상반된 이념이 만들어낸 상대에 대한 몰이해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에 가깝다. 처칠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심경, 부하에게 이야기한 내용, 회고록 등을 통해 그의 말에 역사적, 정치적 맥락이 입혀지고 우리는 이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보다 입체적이고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1945년의 이 6개월은 향후 45년이상 계속되는 냉전의 시초에 해당한다. 마이클돕스의 1945를 통해 이 중대한 6개월을 보다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ㅅ시만, 애초에 독자로 기대한 냉전의 촉발점을 발견하긴 어려웠다. 오히려 냉전의 개념에 대한 혼란? 또는 그 근본속성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커져나갔다.

얄타회담에 참여한 강대국 3국가의 세 거두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은 6개월 뒤 포츠담회담에선 스탈린만 회담 끝까지 남게 된다. 두 번의 회담은 2차서계대전을 종식시키고 세계의 평화적 통일? 을 위한 연합국의 구체적 협력행위였지만 결과적으론 불명확한 결론과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의 해석만을 낳았다 . 분명 6개월사이에 세계정세는 변했고 연합국에게 승리는 확연히 가까워졌다. 초강대국 소련은 독일에 이어 일본과의 전쟁에도 참전을 하여 미국을 도울 계획이었고, 미국은 전례없는 원자 폭탄 실험에 성공하여 전쟁 종식과 연합국의 승리에 한발짝 더 다가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연합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두나라 아니 세 초강대국의 냉전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결코 막을수 없는 일같이 느껴진다. 2차대전이 종식되기도 전에 새로운 전쟁을 대비한다는 느낌이랄까. 그들 모두에게서 '오늘의 아군도 내일의 적이다.'와 같은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냉전을 너무 제국주의적 팽창 개념에 갖다 붙인거 같아 '이념'을 기준으로도 생각해보았다. 애초에 냉전을 이념전쟁으로 보는 게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해도, 1945년과 향후의 냉전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미국과 소련양국이 추구하는 이념은 모두 초국가적인 이념이다. 어찌보면 두 체제 모두 근본개념상으로는 구성원을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양국은 스스로 고수하는 이념에 반대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늘 옳은 행동하는 것 처럼 포장했지만, 사실 그것은 '기만'인 경우가 많았다. 인민을 위한 일이라면서 고혈을 쥐어짜고 그들을 희생시켰다. 세계평화와 최소한의 도덕률이란 이름뒤엔 언제든 국익이란 이름으로 살육을 정당화 할 또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1945년 7월부터 17일간 이어진 포츠담회담에서 얄타회담의 루즈벨트와 처칠이 끝까지 함께했다면 미,소간의 냉전이 본격화 되는 걸 막을 수 있었을까?

루즈벨트의 자리를 이은 트루먼이 세계평화를 외치면서도 연합국이 아닌 미국만의 승전을 가져다 줄 신무기 원자폭탄 성공 소식에 보이던 기쁜 감정과 그 전쟁관성 앞에 무기력했던 건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 인 것은 아닐 것이다. 누가 됐든 당시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제국주의의 얼굴을 가졌으면서도 이념이란 가면을 쓰고 힘자랑을 하는 두 패권국가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싶다. 냉전의 시작은 어찌보면 포츠담이나 얄타회보다도 이전, 양국이 속으로 적대시하면서도 서로의 필요에 의해 연합군이란 이름으로 할 때 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두 개의 태양이란 있을 수 없는 땅따먹기 싸움의 속성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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