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이론의 모든 것 - 프랑크푸르트학파부터 지구화론까지
앤서니 엘리엇 지음, 김봉석.박치현 옮김 / 앨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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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기) 현대사회이론의 모든 것_앤서니 엘리엇





<알고 쓰는 말, 모르고 쓰는 언어>



한동안 잊고 지냈다. 우리 모두가 사회속에 놓인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먹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모두 내 자유라고만 느꼈다.

어른이 된 뒤로는 더욱 그랬다. 특히 말과 언어는 내 생각과 내 존재의 주체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 여겼다.

"현대사회이론의 모든 것"에서 언어학의 구조주의 부분은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사용하는 말이 나의 주체적 선택이라고만 여긴 순진한 착각에 커다란 한방을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다.

언어학의 대명사 격인 소쉬르는 "언어와 대상세계의 관계는 관습적이라 주장" 한다. 이것은 언어가 그 대상과의 본질적 관계를 드러내는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하여 구조화된다는 의미다. 언어는 독자적 체계라기 보다는 자의적이고 관습적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언어에 의해 구조화 되는 사회속의 개인들은 언어를 가지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사물을 알게되고 사회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보면 언어의 의미는 언어발화자의 마음속에 있는 의도적인 생각의 결과가 아닌게 된다.

소쉬르의 이러한 주장은 너무 강하게 느껴져 사실 거부감이 들었다.

언어의 기능을 '차이의 표시'에만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언어를 한정적으로만 보고, 또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개인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하여 이에 대한 반론이 뚜렷히 떠오르지도 않았다.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언어 선택을 통해 주체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했면서도, 언어와 그 대상과의 본질적 관계와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지도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언어속에서 전이되는 사회의 관습화된 상징적질서가 그 자체로 은폐되어 있음을 고찰한 소쉬르의 언어학은 당연해 보이고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기존질서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론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준 측면에 의의가 있다고 느껴졌다.











<언어라는 거대한 구조 앞의 페미니즘>



소쉬르의 언어학은 구조주의적 사회의 단면을 비추고 그것을 사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젠더억압과 남녀차별문제는 언어가 만들고 유지시키는 상징적 질서라는 구조의 문제성을 수면위로 이끌어 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정치적 페미니즘은 여러사회이론가들에 의해 그 당위성과 필요성이 주장되어왔다.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젠더억압의 원인에 대해 프로이트, 라캉의 이론이나 기타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반영하여 설명하고 있다. 핵심원인에 대한 분석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 언어가 사회적 기호로서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질서로서 억압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는 비교적 공통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남녀차별속에 존재하는 젠더억압에 대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젠더 역할을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러운 성향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사회와 문화에 의해서 심층에서 결정된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언어라는 기호적인 것을 엄마의 몸에다한 기억과 내밀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개념화했다. 이는 통상적으로 여성적인 것과 관련된다. 그녀는 모성이 상징적인 것의 기호화를 대표한다고 보았다.

줄리엣 미쳴은 프로이트, 라캉이론을 적용하여 엄마의 몸에 상상적인 일체감을 느끼던 아이는 사회적이고 성적인 차이의 상징적 질서속 으로 이행하는데 여기에 요구되는 것은 제3자인 아버지와 그 도구인 '언어'라고 이야기 한다. 양성 모두가 사용하는 언어가 특정 젠더가 특정 젠더를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현실을 이야기 한다 .

초도로우는 고전적민 프로이트이론의 가부장적 가정을 거부하면서 정신분석학의 대상관계이론, 그리고 핵심 젠더 정체성이론에 주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모성인데, 모성의 재생산에서 초도로우는 여성만의 엄마 역할이 젠더억압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주디스 버틀러의 중심테마는 언어 또는 담론으로 특히 기호는 언제나 차이의 문제라는 포스트구조주의의 통찰이다. 그녀는 젠더들이 행하는 사회적 수행은 언제나 지배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의 문화적 재현을 복제하고 모방한다는 것이다

젠더 정체성의 구성된 성격과 이를 수행하는 개인을 주체로 만드는 사회정치적 힘을 은폐한다. 이는 그 자체로 젠더란 것이 구조적 결정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페미니스트 이론가, 운동가들이 언어라는 기호에 집중하는 이유는 언어가 기존의 상징적 질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고 있고, 그 질서는 젠더라는 이름의 억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언어가 불평등의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언어속에서 전이되는 사회의 질서가 지극히 안정적이고 당연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언어의 기능과 그 심연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아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론 페미니즘이 항상 과하고 가족해체를 부추긴다고 잘못생각한 시기도 있었다. 젠더억압에 맞서는 일은 단순히 개인의 차원의 일이 아니다. 거대한 구조에 맞서는 일이다. 이미 질서화된 구조적 결정 앞에, 그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의 힘으로서만 그것을 해결 할 수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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