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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의 결정적 순간들 ㅣ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허승철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1991_마이클 돕스]<고르바초프를 위한 변명>
[소련붕괴는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20세기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이념이니, 냉전이니, 미소갈등과 같은 문제는 따라 붙는다. 이 문제들이 6.25한국전쟁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기에 그렇다. 그간 그래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우리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유령처럼 붙어서 귀찮게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의 부재로 이런 감정을 공유하는 세대에게도 현재는 존재하지도 않는 소련이란 존재는 여전히 막강하다. "한국인이 처한 민족적 특수성...."이란 도입부 말만으로도 짐작 가능한 북한의 존재! 그들이 택한 체제의 형식적 전통성이 소련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어서라고 볼 수도 있고, 날 때부터 초패권국가인 미국의 파워를 눈으로, 몸으로 체감하며 커온 사람들에게 한 때 미국과 견주던 소련이란 나라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궁금증이 서려있을 법도 당연하다.
그래서 1991을 펼치게 되었다. 소련의 붕괴가 오늘날의 북한체제에 던지는 메세지가 있을까? 20세기를 통째로 뒤흔들며 미국을 위협하던 초강대국가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 관심조차 없던 이런 궁금증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마이클 돕스의 1991은 독자가 가지는 이러한 궁금증에 매우 충실한 책이다. 소련이 붕괴되는 순간의 마지막 10년! 소비에트연방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미세한 균열들을 놓치지 않는다. 연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은 마이클돕스에 의해 소련제국의 종말을 가리키는 커다란 이정표로 변모한다. 저자는 그 균열들을 프롤레타리아, 체제, 민족, 공산당이란 네이름의 반란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을 조명한다. 소련붕괴의 원인과 시점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만큼 어느 하나의 결정적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해진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의 내부를 생생한 현장감으로 전할뿐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건이 결정적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사건의 양상과 결과는 크고 작은 다름으로 나타났지만 본질은 모두 동일했다. 소련체제 그 자체의 종말을 의미했다.
아프간침공이든, 체르노빌원전사고드니 kal007 민항기 폭파, 레닌조선소파업이든 모두가 한줄기로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사건들에 우둔함과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표현이 붙은 것은 소련체제를 향한 조롱과도 같았다. 소련체제는 인간과 자연을 철저히 생산요소로만 간주하고 양적팽창을 위한 수단으로서 착취해왔다. 스탈린의 시대에는 이 계획경제가 언정도 먹혀들어갔다. 생산원료의 투입과 생산, 그를 통한 대외팽창을 이뤄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제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체제의 비효율성은 더욱 드러났다. 시장경제는 자체적으로 개선을 하는 기제가 무수히 많았지만 계획경제는 그런것이 없었다.
이 비효율적인 체제를 떠받치는 것은 더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공산당의 존재뿐이었다. 공산당 세력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쿠데타를 시도했을 따 군 수장이 자신 공산당들에 "절반은 술고래고 절반은 무능력했다"라며 스스로 쿠데타를 포기한 사실에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후 70년 동안 소련에는 비대하고 무능력한 공산당만 남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련의 말로는 운명은 정해진 길을 따라간 것 처럼 보인다. 거기에 마지막 방점을 찍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아버지 고르바초프의 등장도 어쩌면 마지막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르바초프는 개혁가인가. 추월당한 구시대 황제일뿐인가]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유지시키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지만, 결국 74년 소련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불명예?를 안았다. 소련의 서기장이라는 지위에서 고르바초프의 선택 하나하나는 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제국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만큼 컸다. 그래서 저자는 그 순간을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상당히 모순적이고 상충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었는데, "천재성과 무능, 이상주의와 이기주의, 순진함과 교활함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다"는 저자의 표현이 딱 적절해보인다. 고르바초프의 이런 모순성은 정치적 모호함이란 형태로 가장 빈번히 표출되었다.
고르바초프의 모순성에 대해 저자 마이클돕스는 냉정한 시각을 잃지 않는듯하다. 그에 대해 "자신이 추진한 개혁에 추월당한 개혁자였으며, 자신이 착수한 혁명의 희생자가 되었다" "고르바초프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 않았어도 일어날 일을 벌어지도록 '허용'한 일이었다." 고 평가한 부분에서도 이러한 시각이 느껴진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체제유지라는 틀 내에서의 불완전한 것이었으며, 개혁의 주체자라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던 평화주의자 정도의 인식이 더 강한듯해보인다.
소련붕괴와 고르바초프에 대한 평가는 시대, 민족, 가치평가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를 향한 평가에 대해 《1991》,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필자의 느낌은 조금은 달랐다. 그를 위한 약간의 변명이 필요해 보인다고 느꼈다. 고르바초프는 서기장으로서 권력을 잡자마자
과거 크렘린 지도부가 폐쇄적으로 내리던 결정에 일반인의 참여할수 있도록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다. 그의 정치적 모호함과 경제적 정책들은 분명히 실책이며 그를 여전히 '공산주의자로만' 보이게 했지만, 그는 결코 공산당을 위한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던 걸로 생각된다. 그가 소련 최초로 인민대표회의라는 민주적 자유경쟁 체제를 도입하면서 외쳤던 "모든 결정은 소비에트로"라는 선언은 사실 70년전 볼셰비키혁명의 핵심이념이었다. 프롤레타리아 해방이라는 그 숭고한 기치는 오로지 소련 인민을 향한 가치였다. 1980년대 후반, 당시 소련체제하의 공산주의는 이미 변질될대로 바뀐 괴물이 된 상태였다. 고르바초프는 다름아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인민을 위하는 진정한 후계자서의 면모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그가 스탈린을 공개석상에 비판하고 레닌 연구에 목메달렸던 이유도 스탈린 이후의 공산주의는 진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던 걸로 보인다.
레이건대통령과 제네바 합의를 통해 핵무기 위험을 감소시키고, UN연설을 통해 158개국에 내세운 것은 공산주의 이념포기가 아니라 진정한 볼셰비키즘으로의 회귀를 의미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기존 공산주의 시스템에 위협이됨에도 민주적 절차를 도입하고 글라스노스트를 시행한 것은 그것이 인민을 위해선 필요한 일이었기에 도입한 것미다. 공산당이 비밀유지, 폐쇄화, 관료주의화하고 크렘린을 통해 위장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있을 때 그는 더이상 대외팽창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무력사용을 꾸준히 반대하고 그것이 인민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 여겼다. 발트3국이 독립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 책사겪인 야코블레프를 리투아니아에 파견시켜 진상조사 한 후 그들의 독립주장이 페레스트로이카에 부합한다고 주장해 무력통제를 반대했다. 그리고 독재폭력를 일삼는 루마니아 차우셰스크 총통에 인민과 유럽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이야기하거나, 극도로 보수적인 동독지도부에 설교하기도 하였으며, 장차 독일 통일은 거스를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리투아니아에서 무력이 사용되어 그가 우경화한 것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을때도 결엔 탄압기관에 제동을 걸어 인민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
고르바초프의 이런 개혁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어야 할 시기에도 모호함을 유지해 인기를 잃은 것은 그 스스로의 책임일 것이다. 천안문사태나 아르메니아 지진 등을 거치며 옐친이나 사하로프에게 시대정신의 선두주자라는 타이틀이 입혀질 때 고르바초프는 반대로 구시대의 공산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굳혀져 갔다. 소련제국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미국대통령 보다 늦게 알게되는 장면은 온 세기를 뒤흔든 제국의 서기장에게 이보다 더 큰 굴욕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고르바초프는 끝까지 체제를 옹호한 공산주의자임에 분명하다. 때로는 자신이 거머쥔 권좌에 집착하기도 했으며 체제안에서 개혁을 통해 인민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오판했다. 하지만 그가 취한 페레스트로이카의 최중심엔 인민이 있고 그는 인민과의 갈등상황에서 번번히 무력 사용을 자제했다. 단순한 가정이지만 그에게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스스로 공산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려놓는 순간이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실패한 지도자임을 받아들인다하더라도 그가 글라스노스트에 잡아먹혔다기보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취한 선택이면서, 단순히 시대변화로서 일어날 일을 '허용'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앞당겼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소련제국이 단숨에 먼지가 되는 벨라베슈스카야숲 회의에서 배제되는 굴욕의 장면 이후에 무력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의기구가 내린 결정을 존중할 겁니다. 국민 스스로 결정하게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가 지도자로서 보인 모습은 수없이 많은 정치적 수사로 점철돼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앞에선 늘 인민을 위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했다.
소련을 해체시킨 고르바초프를 위해 그가 단순히 무시대착오적이고 수동적인 실패자가 아닌 스탈린이후로 사라졌던 진정한 볼셰비즘을 구현하려한 진정한 사회주의자 정도는 되었다고 변명은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