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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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인간과 비극적 일]
"살기 위해 일하지, 일하기 위해 살어?"
아마 이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을 자아실현과 삶의 의미로 삼으라말하지만 그것이 점점 이룰수 없는 이상이 되어가는 요즘같은 독한? 현실에서는 사실 이말이 더 공감가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통신회사에서 설비기술자로 현장에서 수십년을 근무해온 '그'는 분명히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고 그에 맞게 기술력을 체화해온 사람. 더군다나 그 과정속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의 의미와 동료와의 신뢰를 굳건히 쌓아온 사람이다. 그의 인생에서 일은 그의 삶 자체를 의미하는, 삶의 표식이자 증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그가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3번째 재교육을 앞두고 있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그 보다 젊은 부장은 예의바름을 잔뜩 머금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퇴직금을 넉넉히 챙겨주겠다는 속보이는? 말로 권고사직할 것을 종용한다.

결국 그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받고, 지방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수십년을 현장에서 일해온 그에게 영업 업무가 떨어진다.
회사는 불황을 이유로 팀내의 노동자들 사이를 갈라놓고 서로를 원망하게 만들었듯이, 지방에 영업이라는 생소한 직무와 할당과 경쟁이라는 구조에 직원들을 몰아넣고 또다시 그들간의 불화를 야기하고 끊임없이 무능력한 사람임을 자각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발령지와 직무가 수없이 바껴도 그는 결코 그만두지 않는다. 사실 그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대출금을 갚기에 빠듯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것이 이러한 수모속에서도 그가 버티는 것에 대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의 아내 해선은 수소문해 알아낸다른 일자리로 이직할 것을 권유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말들이 와닿지 않는다. 그는 바로 살기위해서만 일해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을 내보내기 위해 갖은 상황에 몰아넣는 회사앞에서도 그는 꿋꿋히 버텨내고 있다. 소설의 종반부는 그러한 버팀이 그와 그의 삶 자체를 변화시키는 상황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그는 지방의 철탑 건설 현장에 배치를 받고 이 과업만 끝나면 다시 복직될 것을 약속받는다. 현장은 지역주민과 회사와 경찰이 한데 뒤엉켜 철탑 건설을 두고 지역주민의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회사에서의 일을, 삶과 분리되지 않는, 삶 그 자체이자 실체로 인식해온 그에게 철탑건설은 새로운 과업이자 그 끝엔 본사 복직이 기다리는 완성해야 할 목표가 된다.
그의 개인적인 목표와 회사와 지역주민의 갈등이라는 사회적 양상이 결합되면서 그와 그의 삶을 무참히 변화시킨다. 그는 철탑건설 사업 78조 1조 9번에 편성되는데, 철탑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주민에게 '우리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이라며,어떻게해서든 과업을 진행해나간다. 사실 그는 위에서 시켜서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던 그였다.

점차 시간은 흘러가고 그는 지역주민에게 철탑이 어떠한 영향을 주게되는지 그들의 고충이 무엇인지에 대해 무감각해져간다. 그러한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포기해버린다. 그에겐 회사가 시킨 일, 그가 끝마쳐야 할 과업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회사로부터 줄곧 피해를 받아온 그는 회사가 자신에게 들이댔던 무자비한 논리를 스스로 누군가에게 읇어대는 가해를 가하는 사람으로 바껴있었다. 그는 78구역 1조에 남아있는 "최후의 유일한 9번"이 되면서 건설을 마치게 된다.

하지만 건설완료에도 그의 복직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다. 그에게 부여된 '9번'이라는 번호는 철탑 건설 목표를 부여받은 것이 사람이 아닌 기계나 도구로 느껴지도록 만드는 지점이 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회사 논리에 이용된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괴물이 된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변화를 두고 그가 '악'하다고만 결론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실 지극히 평범한 사람,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일이란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동료애를 갖춘 모범적인 사람에 가까웠다.
그의 변화는 '일'이라는 것이 "살기 위한 일이든 일을 위한 삶이든" 간에 나의 '일'이 이 세상 모든 관계와 사회에 지극히 긴밀하고도 중요한 연관성을 가지며, 내가 한 그 일들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 생각하고 또 관심을 가져야 함을 말하는 것만 같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누구라도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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