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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자 - 김인국 칼럼집 ㅣ 철수와 영희를 위한 사회 읽기 시리즈 1
김인국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6월
평점 :
시대의 어둠을 넘어서_2230자_김인국 저
[말씨를 무릅쓰고 하는 말]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자 업인 김인국 신부에게 성경은 말씀의 보고이자 신도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이끄는 목적과 수단 그 자체이다. 그런데 그가 성경대신 자신의 펜을 들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말씀'에 대해 말했다. 말씀은 말을 받아서 쓰는 것이기에 무릇 성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자기 말이 없는 사람과도 같다. 라고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 신부에게 2230자라는 칼럼은 어떤 의미일까 라는 궁금증이 피어났다.
말에는 씨가 있어 한 번 퍼져 나가면 반드시 싹을 틔우는 법인데, 무엇이 김인국 신부로 하여금 그 위험을 무릅쓰도록 만들었을까 싶었다.
[시대의 어둠을 넘어]
김인국 신부의 말과 글은 자기 반성의 발로이다. 어찌보면 스스로가 속한 종교계 전체를 향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말과 글고 연명하는 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 나라는 지옥 조선이 되고 말았다 이제 어디에다가 '봐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구나'를 외쳐야 할지 모르겠다 설교자의 직무란 본시 사회의 안일과 교만을 일깨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망했다고 믿는 젊은이들이 절반에 육박하고 있으니 그럴 일도 별로 없겠다 "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시대의 어둠과 사람들의 아픔을 크게 느끼는 듯 같기도 하다. 칼럼을 게제한 시기는 2015년 9월 부터 2018년 2월까지로 '파란만장 대한민국'이라 할 만큼 어둠도 실망도 희망도 크게 우리를 휘감던 기간이다. 저자는 아픔에 공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어둠을 드러내고 아픔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2019년 현재의 시점에서 그 아픔의 시기는 과거다. 아직도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 있음에도 그 일들과 무관한 사람들에게는 과거일 뿐이다.
2230자 칼럼에서 거듭 언급되는 단어들... 세월호 참사, 국정교과서, 최순실 등 국정농단, 구의역참사, 강남역 살인 등등... 사실 모두 한 때 온 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들이며 나 역시 어느 하나 처음 듣는 게 없을 정도다. 그럼에보 이 단어들을 듣는 순간 왠지모를 까막득함과 살짝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 같은 사람에겐 한 낱 사건 그것도 지나간 사건이 된지 오래였다. 왠지모를 부끄러움이 이는 듯했다.
우리는 그 일들을 잊은 듯 살지만 그래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지만, 저자의 글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해결했기에 잊은 것이냐고! 아니면 잊음을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 다가오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편히 생각한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기억과 행동만이...]
저자는 선인들의 말이나 역사적 사건 등을 꽤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기억'하고 '행동'하는 사회만이 역사의 실수?를, 시대의 어둠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들이 그저 우연이거나 실수의 결과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는 것으로 충분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겹겹이 쌓여온 역사는 말한다. 시대와 세월의 어둠엔 언제나 그 원인이 있다고!. 그리고 그건 다름 아닌 사람이라고!.
마을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 조직을 구분짓는 층위가 있고 그 시스템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 사람들의 삶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어둠을 물리치는 주체는 우리 스스로의 기억과 행동이라고 더욱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그런의미에서 촛불은 가히 혁명이라 할 만큼 크고 단단한 의미가 있다. 저자 역시 촛불의 의미를 진즉부터 생각한 듯하다.
"무력한 초 한자루가 불의에 맞서는 비무장 시민들의 유일한 압박수단이라서 그렇다. 촛불은 안으로는 재욕망을 태워 없애고 밖으로는 어둠을 비춘다 "
한낱 싹이 단단한 나무가 되듯 작디작아보이는 촛불의 시간이 불러 올 변화. 인고의 시간을 버틴 나무는나무가 되면 더이상 약하지 않다. 꺽으려면 힘쓸 작정에다 가시에 찔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 한 때 나물이던 그것은 아무리 가늘어도 회초리가 되고 육모 방망이가 된다.
[그래도 사람이 희망, 사람과 사람 사이]
2016년 3월 온 사람들이 목격한 세기의 대결 한 편엔 사람이 아닌 알파고가 있었다. 그 결과는 그 대결 자체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사람이 만든 기계 앞에 사람이 이렇게 무력할 수 있음을 처음이자 직접적으로 실감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사람의 힘을. 기계 따위는 흉내 낼 수도 없는 사람의 숭고함을. 저자는 명동성당에 모인 선배들을 보며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져주다 짊어져주다 마지막에는 스스로 죽으러 가는 사명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숭고함이 사람들의 조직된 힘이 잘 발휘 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어떻게 잘 유지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들이 누군가에겐 끝나지 않는 현재가 아닌지, 너무 깊은 아픔은 아닌지 또 그것이 시대의 어둠 때문이진 않은지...
모두가 모두이 눈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을 때 시대의 어둠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종교적 신념이 드러난나는 머리말 부분을 되새기며.....
"2230자 글은 시대의 신음 같은 것이어서 고운 말씨, 고운 말씀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언제나 이 땅을 사랑하시고 이 땅의 형편 때문에 자주 끙끙 앓으시는 하느님의 애끓는 심정이 어느 한구석 한 글자에라도 묻어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