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
김경화 외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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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장은 이미 누구나에게 친숙하다(feat, 스타벅스)>​



책 프롤로그에 나오는 저자의 "문장이라 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는 질문에 나라면 단연코 sentence를 떠올렸을 것이다.(이 책을 집어들지 않았다면). 아니 문장이 문장(sentence)이지 다른 문장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허나 신세대?들에게 문장의 이미지를 물으면 문장(sentence)이 아니라 다른 문장(emblem) 을 떠올린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 자체로 내가 구세대?임을 명확히 자각하게 해준 질문이면서, 동시에 내가 모른다고 여긴 나와는 접합지점이 하나도 없을 문장(엠블럼으로서의)이 실은 나와 나같은 사람 모두에게 생활 깊숙이 연관되어 있구나 하는 새로운 인식을 안겨다 주었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친숙하게 접하는 기업로고나 스포츠구단 마크, 국가의 국기는 모두 그 기원이 문장으로부터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커피를 밖에서 사먹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타벅스 로고를 알 것이다. 어디 신화에 나올 법한 여자(바다의 신 사이렌을 형상화)와 강렬한 녹색의 원형 마크. 1971년 미국 시애틀의 조그만 항구에서 시작한 스타벅스가 전세계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지금, 스타벅스의 기업로고는 스타벅스를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와 분별하게 하는 표식으로 역할한다. 하지만 스타벅스 로고에는 단순한 표식으로서의 역할 외에 창업주의 창업계기, 신념과 가치와 연관된 총체적인 정체성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세 전쟁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하기 위해, 그리고 가문과 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활용 되었던 문장의 역사를 살펴 본 다면 스타벅스와 같은 오늘날의 기업로고가 문장에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알면 알수록 다양하고 흥미로운 문장의 변천사>​



이렇듯 문장은 중세시대 전투에서 피아 식별을 위한 목적에 기원하고 있다. 문장을 영어로 하면 coat of arms이다. 문장은 중세 기사가 갑옷 위에 걸치던 코트에 수로 놓은 문양을 뜻했다. 문장을 관리하는 문장관이 전시에는 메신저 역할을 , 평화시에는 마상 창 시합에서 무기 관리와 심판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다 문장이 전투에 기원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문장이 전쟁에 활용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십자군 원정이다.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유럽 각지의 전사들이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일으킨 싸움이다. 유럽각지의 전사들이 모이다 보니 소통과 단합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이 전쟁의 현장에서 선택된 게 공통의 문양 문장이었다. 십자군 원정을 치르면서 특정 문양을 넣은 웃옷과 방패 문장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전장의 식별 수단은 점차 봉건 엘리트들이 자신의 통치 범위를 표시하고 봉건적 친분관계를 드러내는 사회적 수단으로 변모해갔다.

문장은 사유재산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세의 계약에서 빠지지 않았던게 인장인데 12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 차츰 인장 대신 문장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표식에서 결혼과 분가까지 표시하게 되면서 문장은 더욱 복잡해졌다. 영국 귀족이자 정치 명문가인 텔름-누겐트-브릿지스-찬도스-그레빌 가문의 문장은 719개의 세부문장의 복합으로 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가문의 역사를 알수 있다. 식별 기능은 포기한 채 가문의 긍지를 한껏 내세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렇듯 문장이 여타 상징과 구별되는 특징은 계승된다는 점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문장은 개인과 가족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나타내는 서구 유럽의 시각 상징이었다.



독수리는 로마뿐 아니라 로마가 지배하는 모든 나라에서 로마 제국 자체로 인식되었고, 프랑스에선 3백합이 첨가 된 헨리 4세의 문장은 이후 다른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치며 확산되어 간다. 영국에서는 프랑스의 백합이 엘리자베스 1세 때까지 왕실을 대표하였다.



전쟁터에서 기사의 역할을 쇠퇴 한 뒤에도 마상 창 시합에서 중세 기사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이에 따라 문장이 역할도 보다 다양하고 분명해진다. 토너먼트에 앞서 문장, 깃발, 투구가 전시되는 장면을 보면 여기서 문장관을 비롯한 관객과 귀부인들이 누가 시합에 참가하는지 가늠 할 수 있다. 화려한 깃발과 무장, 무구는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하늘과 땅의 권위와 결합하다>​



교회는 처음에 세속의 언어로 가득찬 문장을 혐오했다. 하느님의 나라 보다 속세의 성공을 기리는 문장이 좋아 보일리 없었다. 하지만 13세기 고딕양식의 발전으로 교회 창문은 더 높아졌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창문을 수놓으면서 빛의 성소로 변한 교회 안으로 문장이 들어왔다. 교황과 성인의 업적뿐만 아니라 성스러움의 신비를 가르치는 데 문장이 큰 도움이 되었다.




평범한 프랑스의 상징이던 백합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나면서 종교적 의미를 덧입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왕실에 정착했다. 동물 문장이 선호되는 서양에서 백합처럼 식물 문장이 사랑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백합이 삼위일체의 숭고한 의미를 부각시켜주는 디자인적 요소를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속의 성공에 하늘의 영광까지 덧입혀지면서 문장은 인장의 법적 효력을 대신하게 되었고 결혼과 장례와 같은 의식은 물론 상품에까지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용도로 까지 확장되어 간다.



문장은 나라의 국기에도 영향을 주는데,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상황에서 이 같은 문장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세계 영토를 놓고 싸우면서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교황은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과 1529년 사라고사 조약을 통해 대서양 한가운데를 경선으로 나눠 새로 발견된 땅의 서족은 스페인이 동쪽은 포르투갈이 갖는 걸로 보았다. 16세기의 문장은 가문과 왕실의 권위를 의미하는 데서 발전해 국가와 국가의 권력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우리가 국가의 상징으로 떠올리는 국기의 역할을 16세기 문장이 이미하고 있었다.







<문장 속에 깃든 살아 숨쉬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



이태리 밀라노의 상징 중 하나로 비시오네(큰 뱀)가 있다. 비시오네는 밀라노의 거리 건축물이나 인터밀란의 어웨이 유니폼으로 사용 될 만큼 밀라노의 상징과도 같다. 비시오네는 큰 청색 뱀으로 비스콘티 가문이 십자군 원정 때 이 상징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큰 뱀에 대한 인식은 일반적으로 혐오스런 동물에 가깝고 더구나 서양에서 잘쓰지 않는 뱀이 어떻게 문장에 들어가고 상징이 되었을까?





역사학자 줄리아 카츠위츠는 비스콘티 가문의 문장 속 뱀은 언뜻보기에 사람을 잡아먹는 형상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낳는 모습이라 말한다. 뱀은 보통 머리부터 먹는데 문장에서의 다리부터 먹는 모습은 먹는게 아니라 낳고 있는 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뱀이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생산적이라는 인식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발견된다.

성경에서 뱀은 사악한 이미지로 나오지만 고대 신화나 종교에서 보면 뱀은 대대로 허물을 벗고 재생하고 부활하는 이미지였다. 문장에 깃든 역사와 문화는 오늘날의 인식의 뿌리와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뱀에게 덧씌우진 기존의 인식 말고 새로운 시선으로 봐라봐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는날에도 우리에게 문장이 필요한 이유>​



문장의 흔적이 오늘날에도 직접적으로 남아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국기이다. 문장의 도형모양 중에서 수직삼분할, 수평삼분할, 십자가, 캔턴이 국기에 많이 응용되었다.




문장의 도형 뿐만아니라 상징적인 색들도 응용되었는데, 힘을 과시했던 구소련의 국기를 보면 문장으이 바탕으로 가장 많이 쓰였던 노랑과 문장 형상의 색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됐던 빨강을 이용해 단결된 연방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봉의 문장을 보면 삼분할된 유럽식 문장을 쓰고 있지만 서포터로 등장하는 동물은 그 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블랙팬더다. 유럽의 정신을 따르고는 있지만 자국의 주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알 수 있다.



문장의 문법과 언어를 오늘날에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장은 중세 1000년이 비축한 역사이며, 착용자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까지도 담고 있다.

현대에도 중세 문장의 영향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이것은 유럽에 국한 된 것은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동양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문장을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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