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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김상윤.정현애.김상집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오월의 눈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
<도대체 왜 광주였을까? 도대체 왜! >
광주민주화항쟁을 근현대사 교과서를 통해서 접한 나같은 사람들에게 5.18 광주의 이야기는 결과를 알고 보는 슬픈영화 같아서 세세한 디테일에 관심을 두기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광주민주항쟁이 오늘날의 대한민국를 피로 일궈내었고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어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란 걸 알면서도 동시에 그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이상한 백지상태 같았다. 그럼에도 광주사태에 대해 어렴풋한 의문이 가졌던 기억은 있다. 왜 광주였을까? 왜 광주사람들만 참극앞에 무방비로 서있어야 했었을까?
녹두서점의 오월은 스치듯 어렴풋이 남아있던 나의 의문을 생생히 되살려 놓았다. 녹두서점을 운영하던 김상윤과 그의 아내 정현애, 동생 김상집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1980년 광주의 오월을 온몸으로 겪으며 그 역사를 결과를 품에 앉고 살아온 산증인이다. 살았남았다는 지울 수 없는 죄책감과 함께..
녹두서점의 오월은 신군부이 잔혹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거리로 모이게 되었는지,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지 왜 끝내 총을 놓을 수 없었는지 생생히 전하고 있다. 특히 녹두서점이 학생대책위원회의 중심적 기지 역할을 하면서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광주항쟁을 조직화하고 시민들을 하나로 묶고 지원하는 창구가 되었다. 이렇듯 녹두서점은 광주항쟁 당시에도 큰 역할을 하였지만, 이 책에서 녹두서점이란 공간은 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소식과 말들이 오고가면서 시민들이 온몸으로 맞썼던 피의 5.18 그 비극의 참상을 생생히 전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어준다. 우리는 녹두서점의 오월 그 중심에 있었던 김상윤씨 가족을 통해 그 진실에 조금더 가까이 다가갈 수있다.
녹두서점의 오월을 읽어내려가며 어렴풋이 가졌던 광주항쟁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저자 정현애씨는 18일 새벽 남편 김상윤이 갑작스레 예비검속으로 끌려가고 18일 오후 느닷없이 공수들이 나타나 시민들을 곤봉으로 내려치고 대검으로 찔러대는 광경을 보고 이렇게 전하고 있다.
"1980년 5월에 특별히 광주만 데모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데모가 일어나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광주가 덫에 걸려든 것 같았다. 거대한 음모에 휩싸인 기분이랄까."
광주 시민들에게 5월 18일은 자다가 봉창 맞은 격인 정말 예상치보 못한 일이었다. 당시 상황을 추정해보면 1980년 오월 피어오르던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신군부의 정권장악에 대한 우려와 함께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5월 15일 서울대의 서울역 회군이 있었고 그 결과를 다른 전국의 대학들이 따르면서 16일부터 시위가 중단된 것이다. 하지만 전남대 총학생회는 16일 이미 예정되었던 횃불가두시위를 그대로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하루 뒤인 17일부터 중단하게 된다.
그래서 였을까? 그걸 본 전두환이 본보기로 삼아야 겠다 마음 먹은 것일까? 그렇게 광주는 정체불명의 덫에 걸려들 수 밖에 없었다.
<가슴으로 투쟁한 시민들의 이야기>
독두서점의 오월에는 김상윤씨 가족과 녹두서점에서 있었던 대책회의, 대응, 계획을 중심으로 광주항쟁을 다루고 있다. 김상윤씨 가족을 비롯한 학생들의 이름이 주로 등장한다. 이유도 모른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당시 광주의 이야기를 정리된 기록 형태의 자료로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서점안에서의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상윤, 정현애, 김상집이 감옥에서, 서점에서, 거리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전해들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평범한 시민들이 시민군이 되는 이야기,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시민군의 안타까운 모습, 소년티를 벗지도 않은 시민군이 가족을 지키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모습, 금남로의 구두닦이가 총을 들게 되는 이야기, 유흥가의 아가씨들이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누던 모습, 계엄군의 엄습공포에도 남아서 밥해주겠다던 아주머니 이야기....
특히 시위현장이나 시민군 중에는 10대 청소년도 상당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이 투쟁의 참혹함이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성들의 단단한 투쟁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전두환이 본보기로 삼으려던 광주! 그자가 파괴한 것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 그 전부이자 그 자체었다. 세상에 어느나라 군대가 자국민을 대상으로 곤봉으로 머리를 깨고, 대검으로 찔러 죽이고 , 총알을 휘갈겨 된다말인가! 그것도 죄없는 사람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폭도들이 날뛰고 있는 걸로 둔갑시켰다.
<전두환을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 그는 우리의 또 다른 아들들에게 도대체 무슨 지령을 내렸나>
느닷없이 들이닥친 공수들의 만행은 도를 넘고 있었다. 녹두서점의 오월에는 당시의 참극의 상황이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뒷 사람이 대검에 찔려쓰러졌는데 창자가 훤히 보였던 모습, 곤봉에 머리통이 깨져나간 모습에 대한 묘사들이 등장한다. 공수와 군인들의 무자비한 만행이 도를 넘은 수준이었다는 건 시민들의 여러 이야기를 통해서도 감지된다. 시민들에 따르면 시위 초창기 때 어르신들이 앞장서겠다 하셨다고들 한다. '지들도 부모가 있을텐데 우리를 함부로 하진 못하겠지 ' 하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공수와 군인의 만행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거리에서 들었더이야기에 의하면 '군인들이 광주빨갱이 들은 다 때려 죽여야 해.' 와 같은 말을 하거나, 입을 열때 마다 '술냄새'가 진동했었다고 한다.
군인들의 무자비함은 후속으로 동원되었던 경찰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던 걸로 보인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선 '군인들을 사흘을 굶긴 뒤에 약을 먹었다더라'와 같은 말들이 나돌았다.
전두환은 우리 국민의 아들들인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지령을 내렸단 말인가! 책을 읽어나가며 공수와 군인들의 무자비한 만행에 그 고통이 그대로 전혀져 오는 것 같아 읽기 힘든 순간도 있었다.
진실이 영원히 감쳐질리는 만무하기에 언젠가 군인들의 고백이 이여져 나오기를 희망해 본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녹두서점의 가족들은 5.18 사태의 중심에 서있던 당사자이자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기억과 감정과 상황을 전하는 전달자이다. 김상윤, 정현애, 김상집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광주의 모습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글에서 진하게 뭍어나는 공통적인 감정들이 있다. 죄책감과 부끄러움 같은 감정이다. 김상윤은 5.18을 통해서 운동권의 일선에 있던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무시했던 시민들이 보였던 용기와 투쟁에 큰 죄책감을 가지는 듯하다. 그래서 책이 녹두서점의 중심에서 쓰여질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책은 일반 시민을 위한 헌사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그는 용기가 없어 죽지도 못했다며 이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에도 자괴감에 휩싸인다고 고백한다. 또 김상집은 광주사태 1주기 때 참석한 피해자의 부모가 '자신의 아들에게 총을 쥐어준 자가 누구냐'며 오열할 때 제대로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희생자에게 총을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광주민주화운동 40주기가 도래한다. 40년이면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긴 시간이지만, 오월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여전히 현재의 시간이다. 살아남은 것이 죄책감이 되어 그들의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신군부의 무자비한 살육 앞에 나와 나의 가족을 지키고자 단합할 수 밖에 없었던 , 총을 막기위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놓여진 결과는 죽은 자와 죄책감을 가진 자 두 가지뿐이다. 살아남은 피해자들이 죄책감을 가지는 큰 이유중 하나는 전두환 신군부의 만행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응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투쟁한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살아남은 사람이 죄책감의 무게를 지고 있는 것이다.
정작 죄책감을 가져야 할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은 가? 잘못 되어도 먼가 한참 잘못 된 일이 아닌가 싶다. 죄책감이란 말이 나쁜 일을 한 사람은 제쳐두고 언제부터 살아남은 사람에게 덧씌워진 단어가 되어버렸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