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함께 사전 아홉 살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 창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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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나는
처음 우리말 사전을 보는 법을 배웠을 때
어른에 한 발 다가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단어를 다 알 수 있으니
어른들의 언어도, 책 속의 단어들도 이제
막힘없이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말 사전에 대한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단어의 뜻을 풀어주고 설명해 주는 것이 사전일 텐데
이상하게도 그 뜻과 풀이에 모르는 단어가 더 많아
알고 싶은 단어 뜻을 알기까지 돌고 돌아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말 사전과 안녕하고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사전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어른이 되어서
우리말 사전을 하루에도 몇 번을 뒤적이는 한국어 강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 답답함을 이제는 문제로 보게 된 것이다.
우리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들,
그들의 우리말 언어 수준은 아이와 비슷해
내가 어린시절 느꼈던 답답함을 그대로 느꼈을 것이다.

그런 답답한 마음들을 풀어줄
사전다운 사전, 사전의 미덕을 갖춘 사전이 필요한 나에게
이 정도면 쓸만한 사전이라며 다가온 '아홉 살 함께 사전'

아이들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나와서
학교라는 사회에서 친구와 선생님과 관계 맺기를 하며
필요한 단어들을 골라 만든 '아홉 살 함께 사전'

이전까지 갖고 있던 '사전'이 주던 답답함은
살짝 뒤로 미뤄놓고
어떤 말들이 실려있을지 호기심으로
'아홉 살 함께 사전'을 만났다.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복해서 나오는 아이들이 있어
캐릭터가 있는 소설 같은 사전이다.
한 단어, 한 단어 뒤로 가다 아까 본 아이가 나오면
그 아이가 나왔던 단어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다 "삐쳐" 집에 가던 아이가

친구들과 "화해"하러 다시 나오고,

한 살 어린 옆집 동생 성진이가 줄넘기를 잘하지 못할 거라 "얕보"다가

나보다 잘하는 걸 보고 줄넘기는 동생이 최고라고 "인정하"러 다시 나온다.

단어 뜻을 찾다 뜻 속에 모르는 단어가 나와 사전을 이리저리 뒤지는 게 아니라
화해한 이 아이들이 아까 싸운 아이들인지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사전이 또 있을까?

"아홉 살 함께 사전'의 또 하나의 칭찬거리는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 불합리한 권위 대신 합리적인 존중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 앞에서 태권도 실력을 "뽐내"는 여자아이가 있고,

방과 후 뭘 할지 엄마와 아이가 "상의하"고,

컴퓨터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는 엄마를 "응원"한다.

죽어 있는 예문이 아니라
실제 아이들이 사용하는 상황과 맥락을 가져와
설명하고 있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경우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 뜻이 다소 어렵게 설명된 단어라도
예문들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재미있게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도
상황과 맥락 속에서 그 뜻과 의미를 유추하게
설명하는 데 보통 3가지 정도의 예시를 보여준다.
'아홉 살 함께 사전'도 세 가지의 예시 상황이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상황을
더 많이 찾아보는 활동을 하는 것도
'아홉 살 함께 사전'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일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과 선생님이었던 때를 추억하게 하고,
앞으로 우리 아이들과 함께 봐야겠다 마음 먹게 한
'아홉 살 함께 사전'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사전을 볼 일이 많을 것이다.
내 아이들의 언어 선생님으로,
세상과 어울려 사는 법을 알려주고픈 어른으로,
나 스스로도 관계에 회의가 들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혹은 혼자
 '아홉 살 함께 사전'을 펼쳐보게 될 것 같다.

* 지금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 쪽 인프라도 많이 구축되었을 테니
상황별, 맥락별로 쉽게 설명된 사전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도 이 '아홉 살 함께 사전'처럼 '함께'라는 '관계'에 의미를 둔 사전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남는다.
다양한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지만 그들 모두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 사람과 친구가 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게 될 텐데 이런 사전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냥 종이로 된 사전이 아니라 '아홉 살 함께 사전'처럼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는 사전이 있다면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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