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죽음 - 죽음까지 이르게 한 집착

관리의 죽음 ㅣ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고정순 그림, 박현섭 옮김, 이수경 해설 / 길벗어린이 / 2022년 12월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라는 이름만큼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관리의 죽음>이라는 제목은 낯서네요.

그가 현대 단편 소설의 선구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작품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음을 먼저 고백하고 시작할게요.

사실 그래서 작품이 궁금한 마음 반과 고정순 작가님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 반을 모아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는데요.

과연 저는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걸까요?

평범한 회계원 체르뱌코프는 오페라를 보며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나온 재채기 한 번으로 서서히 불안이라는 구렁텅이로 추락하기 시작하는데요.

앞자리에 있던 브리잘로프 장군에게 자신의 침이 튄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지요.

체르뱌코프는 장군을 찾아가 수차례 사과를 시도합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자꾸 끄집어내서 불안해 하는 체르뱌코프.

그냥 실수라 생각하고 넘기려고 하는데 집요하게 찾아와 자꾸 상기시키는 체르뱌코프가 점점 불쾌해지기 시작하는 장군.

사과에 진심이 더해질수록 조롱처럼 들리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든 체르뱌코프에게 알려주고 싶어집니다.

자, 이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죽었다'는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텅빈 극장의 객석이 그려진 마지막 장면에서는 화면 가득 빽빽한 허무의 중압감이 느껴집니다.

소심하고도 여린 주인공의 마지막이 마치 내게 일어난 일인 것 같아 안타깝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어지네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간결한 문장을 따라 진행되고 독자는 그저 그 흐름을 따라 갈 뿐인데도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뒤엉켜 훅!하고 마음 속으로 와닿는 경험을 하면서 아! 이래서 체호프 체호프 하는구나 싶군요.

거기에 고정순 작가님의 거칠고 얇은 펜선으로 표현된 그림은 긴장감을 더해주니 글과 어우러져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또 책의 말미에 해설이 더해져 체호프와 체호프의 작품 세계에 대해 안내까지 받고 나니 이전에 갖고 있던 어떤 거리감이 줄어드는 기분에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이 너무나 궁금해지네요.

체호프와의 이 첫 만남이 너무나 인상적이기에 아직 체호프를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그림책이네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