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스콜라 창작 그림책 38
허정윤 지음, 이명애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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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늦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마음에 빈 틈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아이가 보이네요.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데요.

그림책 <지각>에는 도대체 어떤 지각 이야기가 그려져 있을까요?

그럼 지금부터 갑자기 내리는 비에 당황한 듯한 두 사람을 조심스레 따라가 보아야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출근길 정체로 꽉 막힌 다리 위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

마치 일상의 루틴 같은 이 답답한 하루의 시작에 끼어든 작은 심장의 두근거림이 사람들의 마음에 불쑥 아니 폴짝 끼어듭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어 보이는 가냘픈 아기 고양이 한 마리의 등장이었지요.



타이어와 타이어,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를 헤매는 작은 생명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정체된 도로 위의 사람들은 갑작스레 뛰쳐나온 이 작은 생명으로 인해 동요하기 시작하는데요.

고양이의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은 차 안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이제 사람들은 아기 고양이를 구하고 싶은 마음과 나서고 싶지 않은 그 두 마음 사이에서 길을 잃습니다.

마치 도로 위의 아기 고양이처럼 말이지요.



하늘에 드리웠던 먹구름은 이내 비를 쏟아붓기 시작하고 그 빗소리에 묻혀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군요.

느릿느릿 정체된 도로의 상황은 꼭 사람들의 마음 같고, 내리는 비는 고양이의 눈물 같기만 하네요.

자, 이 작은 생명에게 손을 내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지나쳐 갈 것인지 머뭇거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우리는 어떤 선택 앞에서 쉽게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느 쪽이는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겠지요.

도로 위에서 만난 작은 생명을 구하는 쪽도 외면하는 쪽도 말이에요.

그림책 <지각>은 바로 그 어떤 선택을 마주친 우리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동시에 우리가 생명의 온기를 품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덕분에 우리에게 또 다른 '지각'이 있음도 깨닫게 되었군요.

정말 늦어서 짜증나는 지각이 아니라 우리에게 용기와 생명을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 덕분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지각도 존재함을 알았고요.

어쩌면 지각할 거라는 무겁고 어두운 먹구름 같은 불안을 걷어내고 안도와 감사로 가벼워진 하얀 구름 같은 마음으로 가치있는 지각을 선택하는 우리도 말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꽉 막혔던 도로 위의 정체는 결국 풀리는데요.

굳게 다물었던 사람들의 입가도 풀리면서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가네요.

바로 오늘의 이 지각이 괜찮은 모두의 얼굴에요.

그림책을 보며 함께 막힌 도로 위에 있던 우리들 얼굴에까지도 말이죠.

그렇게 그림책 <지각>에는 우리에게 어떤 늦음이 때로는 필요함을, 어떤 지각(lateness)이 새로운 지각(awareness)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네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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