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물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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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겨울일까요? 여름일까요?

분명 단발머리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 여름에 어울리는 옷차림인데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겨울이 맞을 텐데 어째서 여자는 추위에 코끝이 빨개지도록 그냥 견디고 있는 걸까요?

스스로에게 벌이라도 주는 걸까요? 도대체 누가 여자를 쫓아낸 걸까요?

눈이 내려 여자의 몸에 닿자 그대로 녹아 물이 되어 흘러내리네요.

저것이 눈이 녹은 물인지, 여자의 눈물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잘 모르겠다가도 왠지 다 알 것 같아 서늘하면서도 평온해지는 이상한 기분이 드는 표지.

안녕달 작가님의 <눈, 물>은 시작부터 눈에서 물 그리고 다시 눈물이 되는 그 모든 순간이 한 번에 다가오는 신기한 경험을 기대하게 하는군요.



눈 내리는 겨울밤, 어쩌다 홀로 눈아이를 낳은 여자.

자신의 체온에 눈아이가 녹을까 전전긍긍하지요.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안는다는 행위로 전달하는 순간 눈아이는 사라져버릴 수 밖에 없어 여자는 최소한의 체온을 유지해 최대한 자신을 차갑게 만들고 아이와 거리를 두며 최선을 다해 아이를 지켜내야 합니다.

눈아이를 상실하느니 차라리 끊임없이 추위에 시달리는 고통을, 안고 싶지만 안을 수 없는 목마름을 기꺼이 받아들이지요.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눈아이를 기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깥 세상에는 눈아이의 생존을 위협하는 봄이, 따뜻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봄이 옵니다.

여자는 어떻게든 이 눈아이를 지켜야 했기에, '언제나 겨울'이라는 것을 찾아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데요.

봄이라는 계절과는 무관하게 세상은 차가운 겨울 그 자체였지요.

'언제나 겨울'이라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여자는 세상의 유혹은 뿌리치지만 결국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외면받습니다.



시간은 그저 속절없이 흐르고 또 흐르네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언제나 겨울'이라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여자는 돈을 벌기 위해 그야말로 갖은 희생과 고생을 하면서도 정작 눈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데요.

어느 순간 여자는 세상의 덫을 끊고 유일하게 지켜야 할 눈아이를 향해 달려갑니다.

가진 것이 사랑 뿐인 여자에게 세상은 절대로 관대하지 않았고, 여자의 집에서 여자를 기다리는 것은 눈아이가 아니었지요.


차가운 눈아이는 어쩌면 애초부터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았음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제발 여자가 눈아이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슬아슬하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지만 결국 여자의 눈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 그 물이 눈아이와 만나는 순간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흐를 수 밖에 없었지요.

따스한 그 눈물은 눈아이를 해치지 않는 유일한 따스함이었어요.

여자는 그렇게 눈물로 눈아이를 겨우 안고 입맞출 수 있었고요.

따뜻한 사랑과 눈물 없는 이 미친 세상에 지켜야 할 유일한 존재가 있는 한 사람이 맨몸으로 뛰어들어 외롭고도 눈물겨운 싸움을 합니다.

남은 것은 눈물 뿐인 이야기지만 그것은 그냥 눈물이 아니기에 항상 우리들 마음 밑바닥에 고여 있을 거예요.

<눈, 물>은 사라질 뻔한 눈물의 생존을 눈물로 그린 이야기로 메마른 우리를 적셔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의 마음에 소리 없이 <눈, 물>이 내려서 쌓이고, 흘러 넘쳐서 눈물로 돌아오기를 바라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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