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사랑스러운 할머니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89
모지애 지음 / 북극곰 / 2022년 6월
평점 :
작은 아이가 텃밭 곁을 지나가는데 어딘가 모르게 눈길을 끄는 구석이 있네요.
가만 보니 자기 몸보다 큰 옷을 걸치고, 자기 발보다 더 큰 신을 신고, 목에는 진주목걸이를 하고,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있습니다.
아이가 귀엽고 궁금해져 제목을 보니 <나의 사랑스러운 할머니>라는데요.
아이가 흉내내는 것은 할머니인 걸까요?
실한 텃밭 채소들을 보고 있자니 분명 이 텃밭 주인일 할머니의 애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네요.
이제 아이를 따라 사랑스러운 할머니를 만나러 가볼까요.
면지를 펼치니 어디론가 차를 타고 가는 가족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수지가 엄마, 아빠와 함께 할머니 댁으로 가는 중이랍니다.
어릴 때 할머니 집에 가는 길은 언제나 즐거웠던 생각이 떠올라 수지 입가에 걸린 미소에 함께 미소를 보며 따라 미소짓게 되네요.
기차 타고 광주 할머니 집 가자는 저희 아이들과 함께 저도 친정에 가고 싶어지는군요.
언덕 위 빨간 지붕!
할머니 집이 눈에 보이자마자 마음은 벌써 도착했을 수지.
수지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바로 할머니 강아지 바둑이인데요.
수지에게는 어서 오라고 왈왈, 할머니에게는 수지 왔으니 어서 나오라고 멍멍!
한데 어우러져 만남의 기쁨을 만끽하는 이들의 몸짓이 닮아 있네요.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서로 닮은 꼴인지 그저 신기하고 그래서 사랑스럽습니다.
바둑이를 따라 집으로 들어간 수지는 이제 본격적으로 할머니 집을 소개해 주는데요.
착한 일 했을 때만 주는 사탕을 숨겨 놓은 부엌을 지나 오래된 화장대가 있는 안방에 가서는 장에 가려고 멋지게 옷을 차려 입지요.
할머니 사랑으로 무럭무럭 크는 채소들이 있는 텃밭과 장에서 사 온 생선으로 저녁을 먹고, 할머니가 사 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며 놀던 수지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수지야!"
현실의 엄마가 수지를 부르는 순간 찾아오는 반전.
할머니와의 시간이 너무나도 생생해 할머니의 부재를 알게 되는 순간 저도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는데요.
마당에 산처럼 쌓여 있는 할머니의 물건들을 보는 세 가족을 보며 할머니의 존재가 산 같았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큰 존재를 보내드려야 하는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복잡할까요?
더구나 이토록 함께 한 시간들이 소중한 '나의 사랑스러운 할머니'를 말입니다.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하늘로 높이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분명 할머니에게 닿았을 거라 느낄 수 있었어요.
가족들의 눈에서 빛나는 눈물이, 밤하늘을 향해 날아 올라가는 반짝이는 불티가, 가족들을 향해 환한 웃음 짓는 별들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고요.
그림책 <나의 사랑스러운 할머니>는 사랑스러운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을 마음 속 서랍에 담아주고, 마지막 안녕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감동을 줍니다.
언제나 떠날 것 같지 않고 찾아가면 당연히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존재와의 이별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같더군요.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기억과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을 품 안에 남겨 두었다는 사실도요.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펼쳐보라고 해주는 <나의 사랑스러운 할머니>의 다정함이 모두에게 닿기를 바라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