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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나를 모른대요 ㅣ 괜찮아, 괜찮아 14
이바 베지노비치-하이돈 지음, 하나 틴토르 그림, 이바나 구비치 외 옮김 / 두레아이들 / 2022년 4월
평점 :

사랑하는 이가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라보며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순간.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일이 정말 나에게도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림책 <할머니가 나를 모른대요>에는 치매로 서서히 모든 것을 잊어가는 할머니와 손녀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요.
손녀인 나의 시선과 목소리를 따라가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즈린카 할머니.
내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고, 못 하는 게 없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고, 다 할 수 있는 나의 할머니.
손녀인 나에게는 이토록 멋지고 다정한 즈린카 할머니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참 많은 일들을 하며 차곡차곡 시간의 기억을 쌓아가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할머니는 아무것도 못 하게 됩니다.
질문이 많아지고, 중요한 것들을 차츰 잊어버리고 말지요.
그러다 그만 나는 그런 할머니에게 버럭 화를 내는데요.
할머니 본인도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시간이 짓누르는 할머니의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아빠가 나에게 설명해 줍니다.
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요양원에 가게 되시는데요.
나는 토요일마다 할머니를 보러 가서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할머니는 자주 똑같은 내용을 계속 묻고 나는 참고 대답하려 노력하지만 늘 그렇지는 못한다 고백합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아이 같고 내가 어른 같아!"
내 말에 할머니는 그저 웃기만 하지요.

그러던 어느 토요일, 할머니는 아빠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할머니를 보고 아빠는 요양원 앞 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우는 아빠를 처음 본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시간은 흐르기도 하지만 머무르고 쌓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시간은 쌓이고 쌓여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닳거나 허물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림책 <할머니가 나를 모른대요>에는 그렇게 기억을 잃어가는 즈린카 할머니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어쩔 수 없이 지켜만 봐야 하는 가족들이 있지요.
가족들과 할머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결코 슬픔과 고통만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데요.
할머니를 위해 함께 한 소중한 시간들을 다시 꺼내고 나누며 함께 하는 지금을 충만히 보내요.
이 그림책은 누군가는 함께 한 기억을 잃어가지만 함께 한 시간을 소중히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줍니다.
사랑하는 이를 잊을까 걱정하는 이들에게, 사랑하는 이가 나를 잊어가는 슬픔을 겪는 혹은 그런 준비를 하는 모두에게 이 작은 그림책이 위로와 힘이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내가 그대를 잊더라도 나를 기억하는 당신이 있고, 그대가 나를 잊더라도 우리를 기억하는 내가 있다는 단단하고 든든한 믿음을 확인하시기를...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